‘아무튼, 발레’, 아무튼 힘빼기

좋은 발레는 어떤 힘든 동작을 해도 보는 사람이 편안하다고 한다. 몸에서 꼭 필요한 부분에 필요할 때만 힘을 주기 때문이다.

몸 쓰는 취미활동에는 어김없이 나오는 이야기. 힘빼기.

대학시절 단대엠티에서 풍물패와 말을 섞을 기회가 있었다. 그날 공연에 그 풍물패 스승이 왔는데, 풍물패 친구들이 받을어 모시는 기운이 역력하더라.

그래서 한 친구에게 ‘저 분 춤의 어떤 면이 그리 대단한 거냐’ 물으니, ‘무슨 동작을 해도 어색함이 전혀 없다’하더라.

먼 훗날.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춤을 보고 동일한 생각이 들었다. 저런 행위 예술과 디스코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몸짓을 일반인이 한다면 보는 내가 한없이 오그라들텐데. 저 이는 어찌저리 자연스러울까.

그 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움’이 내 나름의 춤을 보는 기준이 됐다. 이런 글을 쓰는 내 춤사위는 도저히 스스로 못 보겠다 싶지만…

몸은 마음을 반영하고, 마음이 이끄는 만큼 움직인다. 그래서 움직이는 몸의 선만 봐도 그 사람의 성격을 대충 눈치챌 수 있다. 내성적인지 외향적인지, 섬세한지 대범한지, 악바리인지 순둥이인지, 망설임이 많은지 일단 지르고 보는 편인지.

현역으로 활동했던 사람들한테는 “그냥 잘 안 돼요” 같은 변명은 정말 통하지 않는다. 본인이 피나도록 연습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발레를 규율의 예술이라고 하던가. 발레에 관한 바스티앙 바베스의 그래픽노블 폴리나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들은 행동을 취하기 전에 항상 핑계를 댄단다. 좋은 핑계도 나쁜 핑계도 없어. 핑계를 대며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은 이미 진 거야.”

춤을 잘 추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몸을 만들려면? 역도 기록을 갱신하려면? 

일정 이상의 연습을 해야한다. 너무 기본적인 이야기지만. 그만큼 중요하고 본질적이기 때문에 기본이다. 이걸 간혹, 혹은 왕왕 잊고는 별별 부차적 방법론에서 해법을 찾으려 용쓴다.

고등학교 때 비보잉 파워무브 연습하던 시절, 윈드밀을 성공하기 위해 동일한 동작을 몇번쯤 했을까. 보수적으로 잡아도 수백번 단위. 대략 수천번 단위로 연습했을거다. 그정도 연습량이 뒷받침 돼야 디테일한 방법론이 의미를 가진다. 

취미 영역에서 실력 한계는 대부분 연습부족에서 온다. 직업 아닌 취미 영역에 할애할 시간은 한정적이겠으나. 딱 그 핑계가 발전을 가로 막는다. 지불한만큼 가져가는 거다. 연습량이 부족하니 늘 그 언저리일뿐.

발레에서 아름다움의 핵심은 어떤 동작이든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처럼 해내는 것이다. 그건 우아함의 본질이기도 하다. 격렬한 감정이나 견디기 힘든 고통을 꼭꼭 씹어서 소화한 뒤 한 단계 승화하는 것이다. 무대 위의 발레리나는 어떤 순간에도 배역이 아닌 무용수 자신의 불안이나 통증을 날것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아무튼 발레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260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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