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한다는 것(책, 업무의 신)

상사의 기대치를 뛰어넘는다. 

이 짧은 문장에 포함된 세 단어 상사, 기대치, 뛰어넘는다에는 일을 잘하는 사람의 특성이 담겨 있습니다.

일을 잘하는 살마은 일을 처리하거나 보고할 때 자신이 아닌 상사를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광의적으로 보면 내가 처리한 일을 보고받는 사람이나 내가 한 일의 최종 수혜자인 고객을 의미할수도 있습니다.

상사나 고객이 가진 기대치는 일의 목적 및 결과와 직결됩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을 시작하기 전 먼저 그 일의 목적을 생각합니다. 반드시 왜?라고 묻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등은 그다음 문제입니다. 목적이 일을 하는 이유라면, 아웃풋은 일을 끝냈을 때의 결과입니다. 이 두 가지를 정확하게 고려하면 일을 잘할 수 있습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업무의 질과 시간에서 기대를 뛰어넘습니다. 흔히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다소 극단적으로 말해서 방향은 틀려도 속도는 느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높은 수준의 성과를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업무를 완료하는 시점이 늦어지면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일을 잘하는 게 뭐지? 에 대한 작가 나름의 정의. 서두의 이 부분만으로도 내겐 충분하다. 

– ‘내가 아니라 상대의 시각’을 가지고

– 목적과 산출물을 명확히하고

– 질과 시간이 탁월한 사람

좋다. 깔끔한 정의다.

페이스북은 사무실 한쪽 벽면에 이런 포스터를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완수가 완벽보다 낫다 Done is better than perfect’

저는 이것이 일을 잘하는 사람의 사고이자 업무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을 완벽하게 하는 법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을 끝내는 방법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완벽함은 좋음의 적이다’와 일맥상통하는 말을 만났다. 요즘 이런 문구를 계속 만나는 걸 보니 스스로 계속 의식중인 화두인 듯. 어차피 불확실한 시장에서 불확실한 상품을 끝없이 던지는 게 사업이거늘. 완벽한 무엇을 내놓는다는 자세 자체가 오만일지도. 

아, 물론 같은 일을 수백 수천년간 지속한 장인 세계에는 통용될 수 있겠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할때 쓰는 중요도와 긴급도 매트릭스에, 업무 난이도라는 개념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이제 업무는 X,Y,Z 축으로 구성된 3차원 매트릭스에 위치합니다. 이 중 가장 마지막 순위로 밀리는 업무는 중요하거나 긴급한게 아니라 가장 어려운 업무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업무에는 마음속의 저항이 작용하여 고민이 많아지며 시행하기 두렵고 싫어집니다.

이러한 저항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먼저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일에 완벽할 수 없는 만큼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업무의 난이도로 Z축을 만드는 접근은 신선한데, 어려운 일을 처리하는 대안이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기’라니. 글쓴이는 스스로를 너무 높게 평가해왔기에 저런 처방이 나온게 아닐까? 선뜻 착수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데 저런 마인드셋이 중요할지.

아침에 출근하면 저것부터 한다거나. 물리적으로 오전 특정 시간 동안에 저것만 한다거나. 이런식의 기계적 접근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은데.

‘일주일에 네 시간 일하기’의 저자 티모스 페리스는 그의 책에서 선택적 무지라는 개념을 소개하는데, 이것은 항상 모든 것을 세세하게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필요한 경우에만 노력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과감하게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그는 정말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는 사람만이 효율적으로 일하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언젠가부터 인터넷 뉴스에서 제목을 보고 클릭할 것과 안 할 것의 기준이 명확해졌다. 한 개인의 일탈인 것 같으면 제목만 읽고 지나가고 사회나 시장의 변화거나 그런 변화를 미칠 것 같으면 클릭해서 읽는다.

예를 들어, 한 개인이 별의별 기이한 난동을 부려 뉴스화됐다면 클릭하지 않는다. 그런 일들은 나를 흥분시키기 충분할 만큼 자극적인 사건일테니, 내 의식도 거기 집중될 수 밖에 없다. 그런 또라이는 100년 전에도 있었고 100년 후에도 있을 예정이다. 

그런 가십성/자극적 뉴스를 본다 해서 딱히 나쁜 건 아니다. 다만 인지라는 한정된 내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선택과 집중의 문제다.

티모스 아저씨는 하루 네시간만 한다니, 더더욱 인터넷 뉴스 보고 있을 시간은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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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의 신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598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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