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연은 중하고 귀하다.
트레바리 덕분에 좋은 인연들 만났으니. 돈 내고 서비스를 쓰는 소비자지만, 어느정도 대학교 동아리 같이 여기고 응원하고 싶은 맘도 있다. 어느덧 트레바리 웹사이트 마이페이지를 보니 총 11번째 클럽을 진행하고 있는 걸 발견하고. 간단히 리뷰를 남겨 본다.
고학력, 대기업 직장인 모임
어차피 내가 나간 한정된 트레바리 모임을 모수로 놓고 이야기하는 거니. 편항성은 깔고 간다.
내가 느낀 트레바리 참석자의 평균 페르소나는 ‘대학 석사를 마친 대기업 사무직 종사자’다.
독서토론을 표방하므로 기본적으로 책 읽기를 좋아는 해야하고. 평일이건 주말이건 고정적으로 시간을 내야하므로 근무 형태가 안정적이어야 하고, 독서모임치고는 비싼 돈을 내야하니 어느정도는 재정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이걸 다 갖추면 얼추 저 페르소나가 나오는 게 아닐까. 좀 더 넓히면 대기업 종사자가 아닌 정규직 종사자 정도?
저 조건이 의도하건 하지 않았건 모임의 ‘물 관리’ 필터로 작용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정규직 혹은 대기업 일자리라는 건 잃어버리면 너무 큰일나는 자산이고.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은 보수적이고 신사적으로 행동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트레바리에서는 사회 정규분포 바깥(그게 뭐에 대한 분포건)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으리라. 모임에서 모난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오히려 사회성 부족이나 사교가 세련되지 못하다는 면에서 모난 돌은 나!
요즘 커뮤니티 서비스는 짝짓기 상품 포장 갈이
암수 짝짓기는 자연의 섭리고. 과거 마담뚜부터 현대의 결혼정보회사까지. 남녀 매칭 서비스가 돈이 되는건 당연지사다.
그런데 트레바리를 포함한 제2, 제3의 유사 트레바리가 한결 같이 짝짓기에 너무 힘을 쏟는데. 이건 그들 내부 데이터 기반으로 보면 결국 짝짓기 프로그램에 고객들이 지갑을 열기 때문이겠지?
몇달 전부터, 트레바리 이벤트 게시판을 보면 남녀를 나눠 참가를 받는데. 명시적인 커플 성사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이 자체가 소비자에겐 ‘짝짓기(라고 표현하니 문맥상 너무 노골적이네…)’를 어느정도 기대하게 만든다. 그게 아니라면 화장실도 아닌데 남녀를 가리고 받을 필요가 없잖은가.
트레바리 입장에선 ‘지적 살롱’을 표방하는데, 너무 노골적으로 짝짓기 살롱을 내세울 순 없을 터. 아마 톤앤매너와 그 수위를 내부에서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수익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게 보이는데. 거의 필연적으로 서비스의 올드 팬들과 부닥칠 수 밖에 없다. 돈도 벌면서 올드보이 들도 만족할 수 있는. 그 스윗 스팟을 제발 찾길.
참여 트레바리 모임_시간 순 나열
- 리더십입문 : 모든 서비스나 모임은 첫인상이 정말 중요하단걸, 뒤돌아 보면서 새삼 느낀다. 이 모임 파트너 분이 참 잘했다. 첫 모임이니 그냥 원래 다들 이렇게 하는가 보다 했고. 평일임에도 서울 밖에서 오는 분들도 꽤 있는데 지각이나 결석이 거의 없었다. 나중에 알게됐지만 마지막 모임인 4회 차에 극소수만 남는 트레바리의 대표적 비극은 이 모임에선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 마케터즈 : 나빴다기 보단 아쉬웠다. 마케팅이란 같은 직무를 하는 건 맞는데. 연차에 따라 시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었던 모임.
- 투자입문 : 이 모임에서 스핀오프해 주식 투자 스터디를 만들어 2년 가량 진행했다. 본래 네번짜리 모임이니 당연히 거창한 투자 커리큘럼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 스핀오프 스터디 덕분에 투자 공부는 여기서 가장 많이 하게 됐다. 금융업, 제조업, 공무원. 다양한 직종의 사람과 스터디할 수 있는 계기를 준 곳.
- 제품/서비스 기획자들 : 내가 원했던 뾰족한 ‘서비스 기획’에 포커싱되지 않은게 아쉽긴 하지만. 트레바리 모임의 장점이자 특징이 약간은 느슨한 체계다. 기획자가 아니라도 흥미가 있다면 기획 모임에 참여할 수 있고. 또 그게 다양성 측면에선 강점으로 작용하긴 한다.
- 돈돈 온라인 : ‘관계 맺기는 줌으로 안 된다’는 걸 새삼 확인시켜 준 과정. 두 번의 오프라인 번개를 나가지 않았다면 과연 클럽장 님을 얼마나 알 수 있었을까? 지금도 많이 아는 건 아니나, 기억도 안 나는 온라인 강의 한 편으로 그치지 않았을까. ‘대면의 대역폭이 가장 크다’는 걸 새삼 떠올려 본다. 지금도 트레바리에 온라인 모임이 있긴 한가 본데. 사람들이 트레바리에 원하는 건 온라인 교육이 아니라 관계맺기이므로. 앞으로도 온라인 only 방식으론 흥하기 어렵지 않을까.
- 스타트업_시리즈A : 진짜 철저하게 그때그때 내 업무상 실리에 기반해 트레바리 과정을 선택했네. 당시 스타트업 지원 사무실 업무를 하게 돼서. 스타트업은 어떤게 필요할지 물어볼 수 있을가 싶어 갔던 모임. 한동안 등한시했던 경영 공부를 재가동 할 수 있었던 경험.
- 시민의 도시 대서울을 걷다 : 이건 예외적으로 실리보다 철저하게 흥미로 시작한 것. 삼프로 티비에서 김시덕 박사 님을 보고, 만나고 싶다고 결정. 미디어에서 본 전문가를 맘 먹으면 직접 만날 수 있다. 서울 인프라의 힘을 체험한 몇 안 되는 경험. 이 후에 스핀오프 모임으로 또 2년째 역사임장을 다니고 있으니. 역시 내겐 고마운 모임.
- 스타트업_시리즈B : 스타트업 시리즈A 파트너 분이 시리즈B에 돌입하면서 모임명도 갈아끼웠기에 다시금 가 봤다. 이어서 시리즈C와 상장까지 가시길.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시각을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반쯤은 냉면과 맛집 모임 비슷하게 흘러가기도…
- AI인사이트 : 나왔다. 내 커리어의 마지막이 될 AI. 어떻게든 AI를 이해하기 위해 들어간 곳. 압도적인 지식을 가진 클럽장님 덕분에 어거지로라도 많이 집어 넣었다. 클럽장 님도 트레바리가 처음이고, 하루가 달라지는 AI라 당시엔 지금보다 더 생소하던 시절이라. 모든게 약간은 서걱서걱하며 설익던 느낌. 지금은 어떨지 궁금하다.
- 덕덕 : 트레바리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여러번 말하고 다녔던 모임. 이 넉달동안 모임을 어떻게 꾸려야하는지 배웠다. 이걸 배우는 것 만으로도 덕덕의 가치는 차고 넘친다. 뾰족한 컨셉, 그 컨셉을 구현하기 위한 압박 운영. 이 둘이 아귀가 꽉 물린채 돌아가는 톱니바퀴 모임의 구속력은 엄청나다. 트레바리에 이런 형태의 모임이 다양한 소재로 많이 있었으면 하지만. 역설적으로 트레바리라는 ‘회사’가 쉽게 카피해 내기는 어려운 모임.
- 무경계 : ~ing. 현재 참여중. 참여 인원을 두배로 받아 기존 연장 멤버와 신규 합류 멤버 비중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접근. 인간적 유대를 만들기 위해 최소한의 시간과 빈도가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라, 과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번에 우루루 들어와서 될 일인가 싶었는데. 적어도 ‘느슨한 연대’와 30명이 넘는 사람들 속에 원 오브 뎀으로 있을 때의 안정감이란 것도 분명 나름의 장점임을 확인하고 있다. 흥할지는 모르겠으나 또 망할 방향도 아닌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