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봐 왔던 김시덕 작가의 저작 중 최고다. 그의 책을 봐 오면서 도시문제를 바라보는 내 식견이 높아진건지 작가의 저작 실력이 좋아진건지.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은 최근 들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되풀이된 현상입니다. 혁신도시처럼 인위적으로 인구를 재배치하거나, 공장이나 학교 등의 수도권 진입을 규제하거나, 지방 정부에 더 큰 권한을 이양하는 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시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인구 감소가 반드시 문제는 아닙니다. 인구가 줄면 생활이 더 쾌적해지기도 합니다. 인구가 줄어 가장 큰 문제를 겪는 이들은 자신들의 자리가 줄어드는 정치인과 행정가들입니다. 이 집단들이 지역 소멸의 위험성을 과장하거나 지역 이기주의를 조장하고 자기 지역서 인구가 가장 많았던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 관성적으로 정치적 결정을 내립니다. 이를 멈추게 해야 합니다.
인구 감소가 정말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가족주의, 남성중심주의, 순혈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인구감소가 절대 악이고 우리 국가적 문제일까? 수출은 선이고 수입은 악이라 외치던 시절. 양담배 피우지 말자던 시절. 그 시절 구호와 오버랩된다.
정확히는 왜 감소하는지, 감소해 어떤 형태로 사회가 변화해 나갈지. 만약 인구를 증가시켜야 한다면 왜? 그리고 어떻게 해야할지 관성에서 벗어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멈춰서서.
한국의 국토가 좁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 강박관념 때문에 택지를 만들고 철도 ·고속도로 등의 교통망을 부설한 뒤 사용할 방법이 없어 그냥 버려두는 상황을 전국에서 무수히 확인합니다. 국토가 좁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압축도시 건설, 대중교통 시스템 개선 같은 구체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뚜렷한 전망을 세우지 않고 이루어지고 있는 SOC 사업은 수십 년 내에 지방자치단체들의 재
정을 압박할 것입니다.행정과 정치의 난맥상만 줄여도 한국 도시의 미래는 밝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히 지방자치단체 레벨에서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민들은 정치와 행정이 자신의 삶과 자기가 사는 도시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으리라 판단하고, 이러한 각자 도생의 상황에서 살아남을 힘을 길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이 책을 쓴 이유입니다.
한국은 좁지 않다. 국토의 70%가 산이고 인구 밀집도가 높단 말을 하도 듣고 살아와 그렇지. 전국의 폐허가 된 건물만 촬영하는 강호의 발바닥 같은 유튜브 채널을 보면 땅이 없는게 문제가 아니다.
도시화를 통해 한 곳에서 모여 산다면 남한 면적도 차고 넘친다. 논농사 밭농사 지을 땅 없어 간척공사가 필요한 시절도 아니다. 진짜 부족한게 뭔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생산의 3요소인 토지, 자본, 노동에서 이제 토지는 빠져야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그런데도 좁다고 할텐가.
그리고, 이 책을 압축하는 한 단어 ‘각자 도생’. 지금 이 시점 한국 국민 개개인에게 요구되는 삶의 자세이기도 하고. 한국 근현대사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알아서 살아 남아야 한다. 그러니 잠깐 부는 선거 공약 광풍에 혼미해지지 말고. 눈 똑바로 뜨고 도시 변화를 가늠해야 한다. 어디서 어떻게 살 건지.
“오늘날의 행정구획이란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교통에 달려 있는 것“이라는 1980년대의 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쓴 답사·임장 책에서 도시를 면(面)이 아닌 선(線)으로 보자고 한 것도, 교통망을 따라 여러 행정구역을 넘나드는 것이 현대 시민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타 지역을 관광으로 가면 춘천에선 뭘 보고, 강릉에선 뭘 보고. 이런 식으로 행정단위로 찾지만. 실제 그 지역 사람들은 행정단위와 별개로 생활권이란 걸 가지고 있다. 그래서 면이 아니라 교통이 만드는 선을 따라가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
“여러분이 외지인을 차별하면 우리 마을은 소멸합니다. 토박이와 귀농·귀촌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약속해주시면 이장직을 수락하겠습니다.”
이렇게 열린 마음을 가진 마을만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보니 귀농 · 귀촌하는 분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마을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제공하는 보상금을 토박이만 받고, 외지에서 와서 정착한 사람들이나 세입자에게는 나눠주지 않거나 소액만 주어서 갈등을 빚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봅니다.
귀농· 귀촌은 최근에 시작된 일이 아닙니다. 1960년대에는 도시에서 직업을 찾지 못한 시민들을 정부가 자발적·강제적으로 귀농시키는 사업이 있었지만, 이들도 결국 정착하지 못하고 대부분 도시로 돌아갔습니다.
그 당시의 귀농 · 귀촌 사업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사례가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의 귀농마을입니다. 정부는 새마을운동 당시 이 진천군의 귀농마을을 모범 사례로 자주 소개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이루어진 귀농 · 귀촌 사업의 결과가 좋지 않다 보니, 진천군의 귀농마을이 거듭 소환되었던 겁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농업 국가적 분위기였을 반세기 전에도 귀농 사업이 만만치 않았는데, 하물며 산업화·도시화 정도가 훨씬 심해진 지금은 어떻겠습니까?
뜬금없이 발생하는 현상은 없다. 귀농, 귀촌도 마찬가지. 과거에도 되풀이되던 거지만. 최근들어 지방 소멸의 해법으로 더욱 절실해 조명 받는 것 뿐.
현재 산업은행에서는 퇴사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관이 서울을 떠난다고 퇴사한다는 것은 저에게 반세기 전의 일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훗날 포항제철을 설립하는 박태준 회장이 1964년에 대한중석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직원들에게 강원도 영월 텅스텐 광산촌으로 거점을 옮기라고 하자 서울 사무소 직원들이 대규모로 퇴사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에서 소개했었죠.
공공기관이 서울 ·경기도 바깥으로 이전하면 직원들이 퇴사하는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지난 100년간 이어져 온 길고도 긴 과정이고, 이런 반발에도 국가는 굽힘 없이 이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국가는 효율성을 초월하는 균형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쯤되면 헌법재판소의 ‘수도 서울은 600년 관습헌법’이란 말이 심정적으로 와 닿을 정도다.
각종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하면, 반드시 한 번은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강남 다음에는 어디가 뜰까요?” 그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1979년 10월 26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세종시와 공주시에 걸쳐 만들어졌을 행정수도가 새로운 강남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사망한 뒤로 그 가능성은 사라졌습니다.
새로운 강남을 만들만한 정치적 역량을 가진 집단은 한국에 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종시는 강남을 대체하지 못할 것이고, 강남은 한국이 망하지 않는 한 영원할 겁니다.”
적어도 통일(어느쪽으로건) 정도의 대대대격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강남은 그 지위가 영원할 것.
제가 말씀드리는 강남적 삶의 양식이 탄생한 곳은 송파구 잠실지구였습니다. 택지개발로 건설된 아파트단지, 수변 공간, 복합쇼핑몰의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하여 탄생한 강남적 삶의 양식은, 그 후 한국 신도시의 표준 모델로 자리 잡았습니다.
동시에 1기 신도시인 분당, 2기 신도시인 판교, 그리고 삼성반도체 · 디스플레이 캠퍼스를 따라 수원, 용인, 화성, 오산, 평택, 천안, 아산까지, 강남은 남쪽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은 강남적 삶의 양식과 확장 강남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 지역으로서, 앞으로도 대체할 지역이 없는 한국 사회의 정점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대단지 아파트 + 호수 + 백화점’ 3종 세트로 이뤄지는 표준형 강남 주거 스타일.
대서울권, 중부권, 동남권 3대 메가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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