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도 이집트도 피라미드도. 심지어 쿠푸왕은 커녕 마리오카트에 나오는 쿠퍼 대왕도 관심없지만.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벌어지는 몰입형 VR콘텐츠 쿠푸왕의 피라미드 다녀왔다.

늘 보던 것만 보고 듣던 것만 들으며 에코 챔버에 갇혀 살지 않으려면, 믿을 만한 외부 제안이 오면 어여 수락해야 하기 때문. 간만에 다시 참석한 스터디 일원 분이 제안한 전시회 번개라, 내용에 대한 흥미와 관계 없이 참석했다.
로켓에 자리 나면 어디 가냐고 물으면서 까불지 말고 어여 잡아타라는 구글 임원 이야기도 같은 결 아닐까. 결국은 사람 보는 눈도 기회를 보는 눈도 자기의 식견이다.
이번 로켓의 행선지는 VR 이집트 피라미드였는데. 돌이켜보니 ‘미래는 이미 와있다. 다만 널리 퍼지지 않았을뿐’이란 말이 너무 찰떡인 전시회.
전에 써 봤던 VR은 ‘신기함’을 강요하는 수준이었는데. 이제 달라졌다. 하드웨어 자체 완성도도 높아졌고, 매체 특성을 적절히 살린 콘텐츠의 서사도 이제 폼이 올라왔다.
아니, 이걸 딱히 콘텐츠 차원에서 평론할 생각은 없고. 그냥 이걸 계기로 VR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꼈다. 결국은 오게 될 근미래구나. 확신했다.
특히 인상 깊은 구간은 콘텐츠 안에서 사다리차 같은걸 타고 위로 죽 올라가는 순간. 처음에는 유압식 가스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줄 았었는데.
근데 전혀 아니었다. 그냥 VR 기기가 제공하는 시각과 일부 청각 효과에 제 뇌는 완전히 속아넘어가더라고. 다음 스터디 소재인 ‘지구평평이’ 부류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되는 시간이었다.
우리 오감의 인지 능력 한계가 얼마나 뻔한지. 새삼 느꼈달까.
아직 VR 헤드셋이 지금의 절반 정도 무게로 줄고, 눈의 초점 맞추기도 쉽고 더 선명해져야하는 등 개선할 점이 많지만. 이미 지금도 충분히 유의미한 수준으로 매력적인 매체다.

정말 우습게도. 저런 완전히 평면인 공간에서 VR에 의지해 진행하는데. 콘텐츠 안에 있을때는 저렇게 넓은 평지라는 걸 전혀 인식할 수 없다.
참. 그냥 3D 고양이 보는 것 만으로도 2~3만원 낼 가치가 있지 않나? 최초의 영화는 기차가 플랫폼 안으로 들어오는 영상을 단순히 촬영해서 재생하는 거라는데. 지금 VR 콘텐츠가 그런 셈 아닐까. 그냥 3차원 고양이를 쓰다듬는 시늉만 해도 즐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