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페 플레너로 활동한지 이번이 삼주 째.
한참 주방이 바쁠 때 일어난 일이다.
나는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걸 보조하고 연회식장에 음식이 떨어진 걸 채워주는 역할을 하거든
손수레에 연회장으로 싣고 나갈 음식들을 잔뜩 실어서 출발 하려는데 일하는 아주머니가 빨리 와보라고 불렀다
5분만 일해주고 가라고
그 뒤에는 나의 직속 상관이랄 수 있는 주임님이 빨리 그냥 출발하라고 손짓을 했다.
상명하복, 직속상관 관등성명을 암기하던 최정예 예비역 병장의 논리 시스템은 당연 나의 상위 명령체계에 있는 주임님 명령을 선택했다.
아주머니가 고래고래 불러댔지만 무시하고 손수레 들고 고고~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연회장에 음식 채워놓고 갔다 오니까 아주 난리가 났더구만
아주머니는 길길이 날뛰고 주임님은 아니 내가 시켰는데 나한테 이야길 해야지 왜 애한테 화를 내냐고 맞서고
허허… 나중에 와서 아주머니가 내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그래서 이야기 해 줬지.
아주머니는 빈정대면서 ‘아~ 그래 알았어 잘 두고 봅시다’ 하시네
이 말 듣기전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갑자기, 급속도로,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면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여기서 Pause!
내가 부처 공자 맹자, 혹은 수녀님 정도 레벨만 되었어도 이 사태를 애초부터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었겠지.
‘아~ 아주머니 지금은 일손이 부족해서 일단 급한 추가분부터 채워놓고 아주머니 도와드릴께요’
이 정도가 평소 여유로울 때의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범답안이다.
허나, 일은 바쁘지 한 명은 가라 그러고 한 명은 오라 그러고. 나랑은 전혀 다른 팀에있는 아주머니가 아랫사람 부리듯이 날 보고 오라 그러니 내심 기분이 상했지
그래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것도 무시하고 그냥 갔다
그래, 맘 같아선 전혀 물러서고 싶지 않지만 어금니 깨물면서 딱 한 발짝 물러서면 ‘어른이 부르는데 무시하고 그냥 간 버르장머리 없는 놈’ 정도가 되겠지
계속 한 발짝 물러선 입장에서 도의적으로 보면 아주머니한테 웃으면서 양해를 구하는 정도는 할 수 있었는데 고건 좀 나에게 있어 아쉬운 면이었지
아아악! 제길, 간지러!
하지만, 실제 내 맘은 아니거든. 난 이번 일에 부끄러울것 하나 없어서 그 누가 자초지종을 물어와도 당당히 말할 수 있다.
하나 덧붙일께
사회에서 나이가 얼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
건설현장에서 일할때는 내가 50대 용역아저씨들 한 두명씩 데리고 일 하기도 했거든. 그 아저씨들이 현장에서 굴러먹은 짬밥은 내 수십배쯤 되겠지만 내가 기술공이고 아저씨들이 조공역할을 하면서 일절 충돌이 없었다.
개학 때문에 현장일 끝나는 날에는나랑 같이 했던 용역 아저씨가 악수 청하면서 다음에 인연되면 다시 한 번 보자고 그러시더라. 얼마나 고맙던지
자자~ 이렇게 썻다고 또 사회에서는 예의고 뭐고 직급이나 역할이 장땡이다 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
진짜 프로일 수록 연배에 대한 예의도 지키고 일에서의 위치도 확실히 한다.
다시 예를 하나 더
얼마전에 동기들 8명이서 점심 먹으러 학교 동문근처 중화반점을 갔었다
아직 손님들이 꽉 들어차기 전이라 우리는 빨리 주문을 했다.
결론적으로 40분이 지나서 음식이 나왔다.
그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의 과정은 ‘아줌마 언제 나와요, 우리보다 늦게 온 사람들도 먹고 있는데, 야 우리 가자가자~’
주문이 밀리는 점심시간에는 40분씩 늦을 수도 있다쳐(솔직히 그냥 40분 기다리는것도 짜증). 하지만 우리가 진짜 분노한건 우리보다 늦게 나온 사람들이 먼저 먹고 일어섰다는거!
어쨋든 40분 늑장출동한 음식들을 대면하게된 우리
한 동기가 말했다.
‘야, 우리 아무리 그래도 어른들인데 말 함부로 하지 말지’
이에 흥분한 나를 포함한 우리 동기 몇!
결국 40분 식혀둔 짬뽐처럼 살짝 싸~해진 분위기로 우린 점심을 마쳤다
내 생각은 이래
그래, 영업하시는 분이 어른이지. 하지만 우린 동네 어른한테 점심을 얻어먹으러 온 동네 처자총각이 아니거든
손님과 주인의 관계인데, 서비스에 불만이 있으면 얼마든지 그걸 제기할 수 있는거잖아. 아웃백같은 패밀리 레스토랑만 컴플레인이 있어?
물론 그 컴플레인에 예의를 갖추는게 우리의 도리지
오늘 일은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다.
인사가 만사, 사람 대하는 일이 가장 힘든 일이라는 것을
내 그릇이 아직도 이리 좁고 얕아서 이런 가벼운 일도 삼키지 못한다
음, 어제 저녁에도 자다가 도로 일어나서 후배한테 항의 메일을 보내고서야 다시 잠들었는데. 이거 점점 흥분형 인간으로 변해가는가?
인제가 아니라 천도리였는데, 이년만에 이렇게 까먹다닛! 너이쉐이~ 빠져가지고 김대김대~ 크항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