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에 선정된 책이 아니었다면 분명 중간에 크게 분개하며 덮을 책이지만. 덕분에 끝까지 읽고 GPT와 대화하며, 그래도 내 입장에선 ‘이해하려’ 노력했다.
모든 읽기는 오독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 책의 메시지라. 내 멋대로 오독해도 문제없지 않나 싶어 좀 더 홀가분한 맘이다.
일단, 스릴러도 추리소설도 로판도 아닌 이 괴상한 장르. 갑자기 장르가 전환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애초에 아무 장르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이 전개와 구성.
작가가 의도한 메타픽션이라는데. ‘의도했다’와 그 의도가 잘 구현됐다는 건 별개 이야기다.
읽는 재미로는 차라리 중후반부 반전을 살린 스릴러로 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이도 저도 아닌 느낌.
중반부 오언과 아가씨 간의 혐관 로판물스러운 베드씬 대목은 끝까지 참고 읽느라 인내심을 상당히 소모했다. 뭔교 이거.
혼란스러운데. 여성향 로판물에 공식처럼 쓰이는 어떤 묘사 문법이 있는 건가? 내가 그래서 모르는 것일 뿐 실은 엄청 흥미진진한 대목인 건가?
읽기 낯설었다고 너무 화내진 말자. 내가 이쪽 문법에 덜 익숙할 뿐. 누군간 여기서 진한 페이소스를 뽑아내며 만족하지 않겠는가.
상대의 ‘상처’에서만 깊은 속마음까지 읽어낼 수 있다. 그런데 그조차 오독일 수 있다. 그냥 이 주제에 천착해 보는 것 만으로도 18,000원(인터넷 구매시 10%할인) 효용은 다 한다.
내가 몇번이나 돌려봤던 청춘 성장 영화 ‘GO’. 거기서 복서 출신 아버지가 아들과 공원에서 스파링을 가장한 가정폭력을 행사하며 묻는다.
‘주먹을 뻗어 네 주위로 원을 그려라. 그 원을 나가면 사람들이 널 때릴 테고 너도 상대를 때려야 한다. 그래도 나갈 거냐’
사랑도 영업도 격투도 모두 쟁취다. 나도 남도 절창을 각오해야 한다.
카톡과 인스타그램의 잘 정제된 글과 번듯한 사진에선 발견하지 못할. 몸과 맘 어딘가 깊은 자상을 들여다봐야 상대도, 나도 알만큼 알게 되는 게 아닐까.
그조차 오독일 수 있지만.
1.
인간의 소통은 당연히 오독일 수 밖에 없다.
소통 과정에서 오는 전송 손실이나 변조도 있지만, 양자역학마냥 관찰할때마다 맘이 바뀌기도 한다.
완벽한(이란 단어가 붙으면 으레 그렇듯) 소통이란 말 자체가 허상이다.
상대가 생채기 날 정도로 깊이 들어가야 진심 비슷한걸 알 수 있다. 근데 그조차 오독일 수 있다.
순간순간 바뀌는 게 인간인데다. 최신 학술 논문은 ‘인간의 자유의지, 이로인한 완전한 자의적인 생각’ 자체에 물음표를 계속 쌓는 중이더라.
상정하자. 모든 읽기는 어느 정도는 오독이다.
2.
‘오독의 반대말은 정독이 아니라 무독’, 이번 토론의 띵!한 순간.
이제는 귀여니 시절 촌스런 말장난 느낌이지만. ‘좋아하는 건 because, 사랑하는 건 although’라는 구절이 연상된다.
오독을 무릅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으려 하는 행위. 그게 관계 맺기 아닌가 싶다.
‘여정자체가 보상’이라는 말처럼. 읽은 결과로 얻은 정보가 중요한게 아니라. 실은 읽어가는 행위 그 자체가 관계맺기의 본질 아닐까?
똑같은 책도 누군가에겐 라면 받침, 또 다른 누군가에겐 올해 감명 받은 책 1위가 되는 것처럼.
관계마다 각자의 해석과 쓸모가 만들어지지 않나.
3.
‘의도 만으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전 직장생활 막바지에 많이도 되뇌던 말.
영화 감독은 매번 마스터피스를 만들 ‘의도’로 크랭크인하고. 구병모 아저씨도 장르를 넘나드는 획기적 작품을 만들 ‘의도’로 구상을 시작했을 것.
의도가 어땠냐가 아니라, 그걸 잘 구현했냐로 평가받는다.
근데, 세상 살아가다 보니. 의도가 좋으면 그 결과가 초라하더라도 너무 박한 평가는 어렵더라.
선의라는 것도 의지고 일종의 에너지라. 한 개인이나 조직이 나름의 에너지를 태우고 용썼다는 걸 알기에.
4.
‘인간은 완전히 이해받고 싶어한다’, 이번 토론에서 다시 한번 띵!한 순간.
어차피 본인도 본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물며 타인이?
타인에게 심경을 토로하지만, 실은 제1의 청자이자 독자인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싶은 게 아닐까.
대화라는 형식을 빌려 자기 감정을 스스로 꺼내 넓직이 폈다가 다시 찬찬히 개는 느낌이랄까.
그런 대화 대상으로 GPT만한게 없다. 이 상황에선 GPT에게 자의식이나 감정이 있냐 따위 화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 감정을 펴서 너는 동안 적당한 호들갑 섞인 응원해 줄 그 무언가가 있으면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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