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과 86학번 이강형 선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 선배는 85학번, 세상엔 잘못된게 많아 바로잡을 것도 많았다네
어떤 날엔 손에 펜을 쥐고, 어떤 날엔 짱돌, 어떤 날엔 깨진 보도블럭, 또 어떤 날엔……
그렇게 펜 말고 단단하거나 뜨거운 물체를 잡는 날이 많아지던 때, 자기 같은 학생들이 북문에서 일청담까지 줄을 설 정도였다네
이건 비유가 아니라 진짜 사실, 언론학도가 중히 여기는 ‘fact’ 였다네
같은 과 학생이 경찰의 최류탄에 눈을 맞아 선혈 낭자하게 실려 간 적도 있었다네
선배가 3학년 되던 해 87년 민주 항쟁이 있었고,
그 뒤 세상에 잘못된 것들이 줄어들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선배와 친구들은 4학년이 되었다는 거라네
선배는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새벽 6시에 도서관 문을 열고 친구들 자리 맡아주는 역할을 했네
이제 친구들은 화염병과 보도블럭을 던지던 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펜을 굴리다 저녁 12시에 도서관 문을 닫으며 나왔다네
대개 선배가 문을 열고 들어가 그 패의 다른 한 명이 닫고 나가는 도서관 주인 노릇이 계속되었네
그 뒤 친구들 중 누구는 방송국으로 누구는 신문사로 갔다네
선배는 서울대 대학원을 찍고, 세상이 아이비리그라고 부르는 대학 중 한 곳에서 박사를 땄다네
그 선배가 제작년 우리과 교수로 발령받은 이강형 교수님이라네
경영학부 구동모 교수님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 당시 세상은 취업하기 하 좋은 시절이었다네
친구들은 대기업 합격통지서 5개를 놓고 어딜갈까 고민하고 있었다네
교수님은 유학을 결심했다네
유학을 위해 토플을 쳤다네
나온 점수가 신통치 않았다네
하루 16시간 공부하는데 10시간을 영어단어 외우는데 썼다네
다시 나온 성적표를 들고 해외 유학원에 갔다네
담당자가 말했네
“어느 대학에 보내 드릴까요?”
(이 점수면 어느 대학이든 가능하단 뜻이라네)
그렇게 미국 MBA를 받고 한국에 와서 교수가 되었네
작년에 기획처 부처장이란 직책으로 나와 만났네
아직 결혼은 안 했네, 못 했네? 그냥 그렇단 이야기네
이상 두 이야기는 교수님들께 들은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라네
소설가 성석제의 어떤 단편소설 문체를 흉내내 보았다네
fact에 입각해 썼으나 세부사항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네
‘우보천리’
소의 걸음으로 천리를 가는 방법이 가장 우직하고,
또 땅에 가장 또렷한 발자국을 남기는 법이라네
??? 더 나빠져야 하다니 ???
뭔가 글쓴이의 의도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생각 안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