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사는 마초사회인가?
동기 여자인턴의 이야기를 들으며 직장 내 남자와 여자의 속마음이 어떻게 다를지 생각해 본다.
(아래는 모두 나의 지레짐작이다)
야후~ 여직원 들어왔네. 내가 잘해줘야지
– 아~ 남자들 소굴에서 시작이다. 어떻게 살아남을까.
처음엔 어색할 테니 격의 없는 농담으로 다가서야지.
– 안 웃기는 농담에 웃는 것도 힘들다. ㅡ,.ㅡ…
너무 일 얘기만 하면 딱딱하니까 문자로 안부도 묻고
– 스토커야? 지가 나랑 커플 요금제도 아닌데 뭔 멀티메일만 수십 통씩 보내.
역시 팀워크는 회식에서 만들어 지는 거지.
– 하~ 여직원은 회식 자리 빠지면 딱 티 나니까 ㅜ.ㅡ
술자리에선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나누는 인생 선배
– 네 여자친구랑 헤어질지 말지 왜 자꾸 나한테 물어! 걔랑 헤어지면 내가 만나줄 것 같니?
가벼운 스킨십은 신뢰를 형성하지
– 변태새끼!
이 정도면 난 괜찮은 선배?
– 아~ 회사에 제대로 된 인간이 없다.
2. 균형 잡힌 시각?
여성가족부 주최 양성평등 캠프에서 적잖이 당혹스러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신호등에는 왜 남자만 그려져 있냐. 다른 나라에는 깜빡일 때 마다 남/여 그림이 바뀐다’ 는 이야기까지는 흥미로웠다.
교육 이튿날 팀원들이 함께 거리를 걸으면서 양성 불평등 사례를 찾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지하상가 매장을 다녀온 우리 팀원 중 한 명이 ‘왜 지하상가 구두매장에 남자 구두가 앞에 진열되어 있는가! 이건 남녀차별이다!’ 라는 주장을 진지하게 하는 거였다.
아니, 가게 주인이 주력으로 하는 품목이 남자 구두니까 그렇지.
그럼 하이힐가게 주인은 다 페미니스트겠네.
캠프 참가자가 30명 정도였는데 그 중 남자는 10명이 안 됐다.
양성평등 캠프다 보니 여자들은 억압받았던 상황에 울분을 토하고 소수인 남자들은 어쩐지
가해자 및 공범이 된 느낌이 들어 방어하는 형세로 2박 3일을 보냈다.
그 모임에서 자칭 ‘고달픈 남성의 대변자’ 였던 내가 마지막 날 정리 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여기서 나오는 발언들이 캠프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치우친 면이 있지 않나 합니다.
현실 세계에선 각 상황마다 맥락이 있고 어느 한 쪽이 절대적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는 경우는 사실 잘 없습니다.
또한 미우나 고우나 나머지 절반(남자)을 이해하고 같이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요?
여기에 답변한 분은 아마 전 여성부 장관이셨던 것 같다.
맞아요, 사실 여기 나오는 이야기들이 때로는 과하기도 하고 하나의 문제만 뚝 떼어오다 보니 시회 안에서의 맥락이 무시되기도 합니다.
사회 문제는 균형 잡힌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죠.
하지만 여성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약자예요.
균형을 맞추기 위해 처음엔 거기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힘을 몰아주는 과정도 필요 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 공직 40% 할당제를 보세요.
역차별이란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일단 여성이 조직에서 수치상 40%쯤 차지하게 되면 ‘여자는 그 일 못한다, 남자들에 비해 딸릴 수 밖에 없다’ 는 말이 쏙 들어갑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줘야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상태입니다.
다른 글에도 썼지만 한 쪽으로 넘어지려는 자전거는 핸들을 똑바로 놓아서는 세울 수 없다.
좌든 우든 넘어지는 쪽으로 틀어야 하는 법.
절대적 중립, 객관, 수평 따위는 마찰이 없고 무중력인 공간에서나 먹힌다.
곳곳에 요철과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현실에서는 무너지는 쪽에 좀 더 집중하는 능동적 중립이 중요한 것.
3. 페미니스트 후배를 만나고 싶다.
여성의 권리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을 페미니스트라 정의한다면, 나는 그런 사람이 그립다.
여성이 자기 권리를 찾는 것이 결국 능력 밖의 과부하가 걸린 남자의 짐을 더는 것이기도 하니까.
아침은 던킨도너츠, 점심은 와플, 저녁엔 스타벅스와 치즈케잌으로 요기하고 신상 쇼핑을 떠나는 여자라도 좋다.
그게 페미니스트와 무슨 상관이랴.
킬 힐에 고양이 아이섀도도 물론.
미니 스커트엔 가산점을 주겠어!
왜 우리 후배 중엔 페미니스트가 없었던 걸까.
나와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부당한 위치에 있다는 걸 느끼는 인문학적 감수성과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해야 한다는 연대의식의 부족일까?
‘닮고 싶은 언니의 부재’처럼 대학 내 세대간 단절 때문일까?
내가 좀 더 똘똘한 아이였다면 미니스커트 입은 페미니스트가 됐을 텐데…
페미니스트 후배가 없다는 것은 결국 그렇게 길러낼 선배와 사회가 없다는 말.
그런 후배를 길러 내는게 옳은 일이라 한다면, 그 일을 하지 않은데 대한 책임.
선배로서 자유롭지 못할 것.
결국 페미니스트에 대한 그리움은 강자 쪽에 치우진 세상에서 약자 쪽에 서는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쓸 때도 그랬지만 쓰고 나서도 상당히 불편하네.
여자만 페미니스트가 되리란 법이 없는데……
‘그럼 당신이 직접 나서지 그랬수!’
그런 말이 들리는 것 같아 따끔따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