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헬로우 여러분.
쿠, 돌, 선장이 함께한 퍼펙트 크루저 나인 호의 가나다 기행을 마치고, 한 달 간의 제 장기 휴가가 끝나는 밤 저녁, 여러분께 편지를 씁니다.
기억나? 침대 배정 사다리타기 게임할 때. 너희들은 쿠나 돌이라고 쓰는데 난 쓸 만한 별명이 없었지. 그리고 너희들은 ‘이 특색 없는 놈’이라고 했어. 여행 내내 나의 특이성의 화두 중 하나였는데 정작 별명이 없다니. 학창시절부터 별명이 없던걸 보면, 정의할 수 없는 특이함. 이게 나의 특징 아닐까 싶어.(도입부의 극적 효과를 위한 비약입니다)
셋이서 함께하며 크고 작은 격돌이 있었지(실제론 작고 작은 격돌이었던 듯). 세개의 세계가 150시간쯤 붙어있다보니 자연스러운거겠지. 관계라는 건 결국 그 갈등을 감내할 의사가 있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에 따라 유지될지 파기될지 혹은 더 깊어질지 결정되는 것 같아. 마치, 직장 상사와의 갈등을 감내하고 월급을 받을 것인가, 때려 치고 백수가 될 것인가. 이런 구도랄까.
이번 여행에서 떠오른 단상이 많아 뭐부터 건져 올려야할지 고민이야. 그 중 하나로 ‘관계에서의 존중’이란 걸 꺼내 본다. ‘실리보다 중요한 건 명분이고 명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존중. 상대에게 존중받고 있느냐가 핵심이란 생각이야. 2개의 사건이 떠올랐어.
첫 번째가 밴프에서 쿠의 I want protein 사건. 여기서 완돌이는 ‘(관계에선)어떻게 생각하느냐 보다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어록을 남겼지. 타인은 나의 생각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를 평가해. 어떻게 ‘생각만’ 하는지는 중요치 않을 수 있다는 요지 였어. 이거 당일 내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원노트(오피스 365구매시 용량 추가증정)로 메모해 두었던 내용이라 발언의 워딩과 취지 모두 꽤 정확할 거야. 핵심은, 예산을 아끼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라 ‘완돌이가 예산 집행자로서 존중 받았느냐’.
두 번째는 나와 쿠의 결산 배틀이었어. 쿠가 돌아가기 전 날, 나와 쿠 사이 부채를 어떻게 정산하느냐에서 나온 건데, 기껏해야 만원 안팎의 오차였어. 둘의 관계나 벌이를 생각하면 그 금액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지. 다만 그 때 내가 네이버 환율이니 미화와 캐나다달러의 차이를 이야기하며 억울함을 토로했던 건 ‘내가 쫌생이로 매도되었다’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었어. 존중 받지 못했다는 감정이 본질이었지.
연이어 또 하나의 키워드를 꺼내 본다. 부채의식. 이 단어는 우리가 각자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잘 드러내 주는 키워드였지. 네이티브 김치맨인 쿠와 나는 캐나다에서 시간을 내어 준 돌에게, 돌은 숱하게 많은 여행지 중 캐나다를 선택해 준 것에 대해 일정 정도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어. 관계라는 게 서로 빚지고 빚 지우는 과정인가 싶어. 관계의 갈등 완충지대 이기도 하고. 서로 빚지고 있다는 생각이 있으면 함부로 할 수 없잖아. 이런 면에서 한국의 갑을 관계는 (노동, 서비스)계약을 상호 부채가 아닌 일방의 권리라 생각하는데서 오는 건 아닐까.
나와 쿠가 한국사회를 떠나지 않는(혹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이지.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 누군가 주는 빛을 받아 반사해 빛나는 거지.’ 라는 영화 라디오스타 대사처럼.
마지막으로, 나, 오롯이 나에 대해서도 한 문단을 할애할 게. 나는 원래 나에 대한 관심이 젤 크니까. ‘일반적이지 않다, 스펙트럼 상 바깥쪽에 위치해 있다.’ 이런 진단에 대해 둘은 애초에 의견이 일치했고, 이제 나도 그걸 정말 ‘인정’하게 됐어. 마치 신대륙의 발견 같은 거지. 아메리카 대륙은 원래 기기 있었는데, 발견자가 몰랐을 뿐인거잖아. 나란 인간은 원래 그랬는데 정작 내가 몰랐거나 내심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지.
다만 이 성격상의 특이점이 타고난 기질이냐, 아니면 가정환경에 따른 후천적 형성이나는 의견이 갈렸는데, 어느 쪽이든 그걸 과거로 돌아가 바꿔 놓을 수 없으니 너무 천착할 필요는 없을 듯 싶어. 유시민 작가의 책 광고 문구처럼, ‘어떻게 살 것인가’가 더 문제이니. ‘민감한 감정 감지 센서’ 플러그가 빠졌다는 것을 인정 하였으니 To-be,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즉 다음 계단을 밟을 준비가 된 것 같아.
사실 여행 전엔 내내 고민했어. 비행기표 끊어 놓고도 이렇게 긴 시간을 이 돈 들여 가야하나. 여행 내내 너내들을 김빠지게 했을 멘트인 ‘여행 자체를 즐기는 편도 대자연에 경탄하는 경우도 없는 난데’, 그냥 한국에서 모텔이나 텐트를 전전하며 책을 뒤적이며 공책을 끄적이는 휴가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며. 결과적으로 충분히, 아니 넘치게 큰 여행이었어. 의도대로 너희와 대화하며 나의 안 보이던 조각을 발견했고, 너희들 내면 깊은 곳까지 방문해봤지.
대자연에 전혀 감응하지 않았던 것도 아냐. 레이크루이스의 차가운 고독(입 닥치고 있으면 너무 쨍한 고독한 소리가 들림), 나이아가라 폭포의 백색소음. 이게 인상깊었던 대자연의 선물이였어.
여행의 키워드는 나, 한국, 캐나다였는데. 세 키워드 모두 의미있을만큼 천착해 본 시간이었지. 25살에 처음 떠났던 해외여행, 이후 10년 만에 맞은 긴 해외여행. 그때 만큼이나 큰 지적 자산을 챙긴 듯 해. 너희 둘이 아니었다면 몹시 가난한 여행이었을 거야. 이렇게 또 한번 부채가 늘었다. 꾸준히 상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