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 도자기 체험이라.
회사 다니던 시절엔 시간도 에너지도 효율적으로 써야하므로 기존 취향과 안 맞으면 어떤 체험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불과 두 달 전 물레 체험 가자는 제안에 대한 나의 반응을 예상하면.
‘뭐여, 포드가 컨베이어벨트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한지도 100년. 이제 AI 혁명 시대인데 손으로 식기를 만든다고?’
재직 시절엔 일을 해결하기 위해 빠른 판단과 기세가 필요했다. 설혹 그 판단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더라도 망설이며 마켓 타이밍을 낭비하는 것보단 났다는 생각이었고.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건 배제, 회의에 엉뚱한 소리는 중단, 여가도 철저히 실력이 쌓일 수 있는 기존 하던 것 위주로!
모든 취미가 실력이 쌓이는 거긴 하지만. 축구 관람이나 영화 보기는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실력의 증대가 안 보이는 취미인 반면. 내가 즐기는 라틴댄스라는 춤도, 역도라는 운동도 잘하고 못하고가 확연히 구분된다.
해당 취미에 시간이란 자원을 지불하고 뭔가를 지속적으로 얻어가고 싶은, 대개는 비실용적이어야 할 취미에서도 철저히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걸 원했던 것.
그런 내가 항아리 빗는 메소포타미아 인도 아니고 물레 클래스 긍정 후기를 쓰다니! 역시 난 한 치 앞만 보고 달리는 퍼킹 셀러리맨 코리안이었다.
퇴사 후 ‘남들이 좋아하는건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까불지 말고 경험해보자’ 모드로 변경한 덕분에 물레가 주는 몰입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
오히려 뻐킹 자본주의 샐러리맨 일수록 물레에 더 몰입할 수 있는 듯. 물레 페달을 밟고 있으면 점토 판은 일정한 RPM으로 돌기 시작하고, 그럼 나는 뭐든 계속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이게 바로 근무 시간 동안 뭐든 산출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직장인 환경 아닌가 싶다.
달리기 시작한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기에 끝없이 달려야하는, 자본주의 비유가 떠오르는 시공간. ‘산출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퍼킹 어글리 코리안이라면 몰입할 수 밖에 없는 게 물레질.
물레 원데이클래스에서 집안 식기 다 마련하겠다 정도의 생산성을 원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실용적인 기념품 수준의 산출물도 받아갈 수 있으니 여러모로 괜찮은 체험. 돌아와서 바로 친구들한테 추천했다.
평소 집중을 못해 걱정이면 물레를 체험해 보고, 돌아가는 물레를 앞에 두고도 몰입하지 못한다면 의학/심리학 전문가와 상담 받아야 한다. 그 정도면 더 이상 민간요법의 영역이 아니기에.
이번 경험을 통해 또 한 번 스스로에게 되뇐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참고: 물레 체험한 곳, 남양주 수동면 마이포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