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란 무엇인가(What Artists Do)’, 토론 후 메모

1.

토론할때 가장 먼저해야하는데 가장 쉽게 놓치는게 논의할 개념의 정의와 이에 대한 합의다.

예술의 사전적 정의는 아래 셋.

1.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2.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3.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번 개념을 주로 다루다가 토론자에 따라 1번과 3번을 넘나들다보니, 뾰족한 논의가 어렵긴 한데. 넓고 느슨하게 논의를 확장하는 것도 트레바리의 맛일지도.

2.

최근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꼈나.

불쾌건 유쾌건 마음의 큰 동요를 일으킨다면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난주 토요일 국회 앞 인파인데.

정치는 지상최대의 엔터테인먼트. 끊기 어려운 사람 미치게 하는 쇼다.

단순히 한 장소에 엄청나게 많은 인간이 모인다는 것 만으로 장관이다. 그 자체로 스펙터클이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같은 지향을 가지고 모였다? 여기서 나오는 에너지가 미친다. 압도된다. 아니, 경도된다.

지인들에게 탄핵 집회를 이렇게 설명한다. 정치적 지향을 떠나 이건 엄청난 콘서트장이다.

몇년에 한 번 내한할지 기약없는 당대 최고 스타 콘서트나, 살아생전 우승을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구단의 결승전 같은거다.

타악기 공연을 지근거리에서 보면 음악적 식견과 관계없이 음압에 압도되는 것처럼, 정치적 지향과 관계없이 하나의 지향을 가진 이들이 땅을 뒤덮은 걸 보면 같은 인간 종으로서 압도된다.

예뻤다 수준을 떠나, 올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12월 14일 여의도가 가라앉을 듯 커진 인간 군집 아니었을까.

3.

예술을 감상하는 자세는 어때야 할까?

우선 도슨트를 듣는쪽? 기성 해설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우선 느껴지는 감정에 충실하는 것?

각자 답이 있겠지만 나는 무조건 선학습이다. 처음에는 닥치고 듣고 읽고 배우고 익혀야 한다.

기존 연구로 쌓아놓은 학술적 권위에 (요즘은 고루해진 단어지만)’복종’한다.

거인의 어깨위에 서야지, 내가 까치발 들어 볼 수 있는 시야는 뻔하다. 그렇게 보고 ‘다 봤네, 별거 없네’ 할 건가.

결국 본인이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뻔한 말을 본인 전문 영역 어느 하나라도 저만치 밀고 나가본 이는 알 것.

취미에 불과하나 살사를 오래추니 잘 추는 파트너에 대한 기준이 크게 달라진다. 초보에겐 고수의 섬세한 리딩이 오히려 어색하거나 미적지근하다. 불닭볶음면처럼 화끈하게 잡아돌리는 쪽이 더 매력적일 수 밖에.

이런 자극적인 맛에는 섬세한 조정이 들어갈 겨를이 없다.

파인다이닝도 마찬가지. 허례허식도 일부 있겠으나, 동시대 미식의 끝까지 가 본 이들이 만들고 평가하는 영역이 있을 것. 누구나 알 수 있는 1차원적인 마라 맛이 아닌, 슴슴하지만 미묘한. 미각이 단련된 그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

스스로에게 늘 되뇐다. 까불지 말고 배울 것.

4.

시대의 첨병

첨병이 필요하긴 한데. 본대가 망하면 첨병도 돌아갈 곳을 잃는다.

잘하자.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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