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What Artists Do인데 한글판은 ‘예술가란 무엇인가’다. 책을 다 읽고 이상해 곱씹어 봤다.
원제 그대로 해석하면 ‘예술가가 하는 일’이나 ‘예술가의 역할’인데. 이걸 엄청 확장해 ‘예술가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단 말이지. 700페이지는 되얄 것 같은 이름을 주석 빼고 100쪽 짜리 책에.
번역자가 단순한 번역을 틀렸을린 없으니 의도된 걸테고. 다 읽고 생각해보니 책 내용을 잘 설명하는 건 원제인데. 책 판매에 기여하는 것, 즉 이 책을 집어들게 만드는 건 한국판 제목이다.
옛다. 결국 둘 다 잘했다. 다만 ‘예술가가 하는 일’을 생각하고 여섯개 챕터를 다시 읽어나가면 내용이 더 직관적으로 와닿긴 한다.
예술의 사전적 정의
- 1.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 2.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공간 예술, 시간 예술, 종합 예술 따위로 나눌 수 있다.예술 작품.
- 3.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영영 사전으로 ART를 찾아봐도 한국어 사전과 정의가 다르지 않다. 해석에 시간이 조금 걸리는 점 빼고.
이 책에서는 동어반복인 1번 정의나 고도의 숙련된 기술을 가리키는 3번이 아닌. 가장 일반적으로 쓰일 2번을 놓고 이야기한다.
책 내용과 관계없이 내가 생각하는 예술과 예술가를 정의하는 단어는 ‘시대의 첨병’이다. 예술가는 시대의 최전선에서 다가올 변화를 감지한다. 감지한 변화를 동시대인에게 어떤 형태로건 보내는 신호가 바로 예술이고.
그런면에서 “예술이란 당신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에드 루샤, 미술가)”는 책 속의 한 문장은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정의와 가장 잘 맞아 떨어진다.
원래 인간은 낯선 것은 경계하기 마련. 괴이하고 당혹스럽다. 반면 안전하고 익히 아는 재미를 재확인시켜 주는 건 대중오락이다.
책 속에서
무트 씨가 그 작품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그는 일상의 물건을 선택해 전시장에 설치했다. 그럼으로써 이 물건의 유용한 가치는 새로운 표제와 관점 밑으로 사라져버리고, 오브제에 대한 새로운 사고가 가능해졌다.
뒤샹은 면밀한 아이디어와 끈질긴 인내에 힘입어 의심과 조롱, 반감까지도 끝내 견뎌내고 자신의 예술 개념이 예술계의 의식 구조에 깊이 새겨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근 30년이 걸렸다.
1950년대까지 그리고 단연코 1960년대에도 뒤샹이 모던아트Modern Art 규범에 기여한 정도는 물리학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공식 E=mc2에 버금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소량의 질량이 막대한 양의 에너지로 전환된다고 단정했다. 뒤샹은 예술가가 사실상 사람들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일상의 사물도 예술이라는 특별한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예술가가 이 혁명적인 원칙을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자신의 예술 실천의 근거로 삼고 있다.
전 직장 고객사는 온라인 패션몰이 많았다. 쉽게 말해 동대문에서 옷을 떼다 파는 온라인 셀러였다. 이들을 주류 미디어, 다시 쉽게 말해 신문과 방송에 어떻게 있어보이게 그들과 그들의 성공을 포장하는가가 내가 있던 홍보팀 역할이었다.
기존 패션 산업에는 디자이너가 히어로였다. 코코 샤넬 같이 당대 패션의 판도를 바꾸는 디자이너라는 직군에 눈길을 주지. 동대문 사입 패션몰은 가락시장에서 무 떼다팔고 노량진에서 고등어 떼다파는 거랑 비슷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코코 샤넬이라면 디자이너는 물론이고 예술가라 불러도 딱히 반론 펼 사람이 없을 듯 하다. 반면 온라인 몰 대표는 자기가 판매하는 옷을 디자인하지 않으니 디자이너도 예술가도 아닌가?
뒤샹 논리를 적용하면 그들은 숱하게 많은 동대문 옷 중 자신의 패션 몰에 적합한 상품을 ‘선택’해 자기 몰에 전시했으니(이걸 업계용어로 큐레이션이라 한다) 적어도 예술가이다.
또 특정 디자인은 선택하고 또 다른 디자인은 배제해 나가며 뚜렷한 팬층을 만들어 나갔으니(자기 선택을 설득해 나갔으니) 분명한 패션 브랜드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술이 그랬듯 시대에 따라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도, 시점도 달라진다. 이제는 동대문 사입이라는 행위도 마켓 뒷단에 감춰진다. 인플루언서라 불리는 누군가가 온라인 클릭 몇 번으로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한다. 이제 그들이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이자 브랜드다.
아, 작가가 예를 든 아인슈타인은 여러모로 적절한 예다. e=mc2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으면서, 그 다음 물결인 양자역학을 극렬히 반대하고 조롱하며 시대의 한계를 보여줬으니.
케이지는 이 두 가지 일화를 통해 감각을 자극하는 모든 원인을 제거하려고 했음에도(케이지의 경우에는 소리를 제거했다.) 인지할 수 있는 감각 요소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정신은 표면적인 동일성에서도 차이를 발견하려는 경향이 있는 듯했다. 그리하여 확신을 얻은 케이지는 소리의 부재를 의도적으로 사용한, 동시에 소리의 부재에 대한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음악이 바로 <4분 33초4’33″>이다.
<4분 33초>는 1952년 비 오는 어느 여름날 초연되었다. 장소는 뉴욕주 우드스톡Woodstock 근처 숲 한가운데의 비포장도로 끝에 있는 작은 목조 건물이었다. 이곳은 예술가들이 커뮤니티 공간으로 사용하는 곳으로 맨해튼에서 차로 몇 시간 떨어진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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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작품<4분 33초>는 튜더가 피아노 앞에 앉아 초시계를 꺼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연주자는 타이머의 시작 버튼을 눌렀고 건반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는 세 번의 무음 휴지부休止部를 지정하기 위해 정확히 4분 33초가 지속되는 중에 이 행위를 총 세 번 반복했다.
케이지는 이 뉴욕 공연을 이렇게 회상했다. “1악장이 진행되는 동안 건물 밖을 휘젓는 바람소리가 들렸다. 2악장 때는 빗방울이 지붕을 두드리기 시작했으며 3악장이 흐르는동안에는 관객들 자신이 이야기를 하거나 공연장을 걸어 나가며 온갖 흥미로운 소리를 냈다.”
나중에 케이지는 <4분 33초>를 다른 작품에 비해 더 오래 더 힘들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 곡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오래 기억되는 곡이 되었다.
초연 이후로 수많은 사람이 수없이 이 작품을 연주해왔다. <4분 33초>는 예술계의 전설이다.
노래교실에서 가장 처음 배운 게 악보에서 숨쉬는 곳을 표시하고 꼭 숨을 쉬라는 거였다. 숨은 자기 폐활량에 맞게 알아서 쉬면 되는데, 노래 부르다 죽은 사람 있는 것도 아닌데 뭐 이런게 중요한 거라고 제일 먼저 강조하는 건가 싶었다.
그 전에 기대한 건 고음 발성법 같은 거였는데. 생각지도 못했고 노래방에서 들려줄 수도 없는 호흡하는 법이라니.
보컬을 배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숨 쉴 때 확실히 놓치지 않고 쉬는 건 기본이면서도 아주 중요하다. 놓치면 보컬의 곡 완성도에 치명적일 만큼.(나도 잘 모르는데 다들 그렇단다)
이렇게 눈에 안 보이고 귀에 안 들리지만 중요한 연주의 일부가 있더라. 4분 33초도 그런 걸로 가득 채워져 있는게 아닐까.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를 경험할 때마다 크리스토와 장클로드는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야 했다.
사회문화적으로 축적된 외국의 낯선 소통방식에서 오는 그 미묘한 차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관료주의라는 또 하나의 복잡한 미로 속에서 어떻게 방향을 잡을 것인가. 기술상의 새로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달리는 울타리>를 작업하면서 크리스토와 장클로드는 쉰아홉 명의 농장주와 목장주로부터 울타리 설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대부분 미술관에 가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처음에 몇몇은 “미안하지만 우리 울타리는 우리가 짓겠소.”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몇몇은 뉴욕에서 온 이 부부를 토지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한 목장주의 말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사람과 친해지는 재주”가 있었다. 매력과 끈기 그리고 울타리 설치에 이용된 모든 재료를 완전히 분해해서 기증하기로 약속한 덕분에 사람들은 점점 두 사람 주위에 모여들었다.
책에 소개된 현대 예술계 거장 중, 퍼킹 코리아 셀러리맨으로서 가장 깊은 감화를 받은 예술가가 바로 크리스토와 장클로드 콤비다.
예술가라 하면 철저하게 자기 내면과 대화하고 결단하고 혼자 작업한 결과물을 내놓는 외골수 캐릭터를 떠올리게 마련인데. 이들은 예술을 위해 관료제와 지역사회 저항을 죄다 뚫거나 녹이며 나아갔으니. 엄청난 의지와 수완이 함께 동반된 예외적인 친 관료/친 지역사회 예술가다.
이들이 정말 사교적 기질을 타고난걸까?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이들은 다수와 원만히 지내기가 쉽지 않은데, 아마 강력한 예술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사교성을 학습하고 끝까지 갈고 닦아나간게 아닐까 싶다.
적성이고 뭐고 간에, 과업 완수를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스스로를 갈아넣는 점이 퍼킹 코리아 셀러리맨들은 감화되지 않을 수 없다.
20여년 전, 미대 애들이랑 미팅하기 전에 내가 훑어본 책이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와 빛의 마법사 렘브란트가 아니라. 이거 였다면. 미래는 달라졌을까? 적어도 좀 더 재밌는 두 시간이지 않았을까.
예술가란 무엇인가_상품페이지, 미대 미팅 전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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