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저자 : 전우익
정가 : 7000원 (할인가 : 6540원)
출판사 : 현암사
출간일 : 2002. 10. 05
책 제목을 너무 잘 지어서, 그리고 그 제목이 너무 좋아서 독후감 제목도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경북에서 서리가 가장 먼저 내리는 동네, 경북 봉화에서 농사꾼으로 살아가는 전우익씨의 서간문 모음집이다.
누구는 전우익을 월든을 쓴 자연주의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에 비견하기도 하더라.
물을 길어다 쓰니까 한 방울의 물도 아껴쓰게 되요
날마다 몇 번씩 쓰는 물을 아껴 쓰는 게 몸에 배니까 자연히 딴 물건도 아껴 쓰게 돼요…….
어쩌다 읍에서 수도물 쓰던 젊은이들이 와서 물 쓰는 걸 보면 나보다 한 열 배쯤 더 써요
아까운 줄 모르는 게 확실해요
글자가 생기자 인간의 기억력이 약해졌듯이 꼭지만 틀면 쏴 쏟아지는 수도가 생긴 다음부터 낭비가 시작된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이른바 발전이라는 것이 그와 맞먹는 후퇴를 안겨 주고 있지 않을까요?
– 126~127쪽
물자를 아끼고 더 나아가 사람을 아끼는 것은 대단한 철학이나 지식이 아닌, 몸에 배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무릎팍 도사에 가수 김종국이 나와서 자기 아버지가 화장실 물 내리는 것도 아까워 하는 분이란 이야기를 하더라.
자기는 그런 집에서 자라니까 목욕물은 한 대야에 형이랑 같이 쓰는게 당연한 줄 알았고.
이런 걸 보면 가정교육은 알파벳, 가나다 선행학습이 아니다.
앞으로 사회에서 평생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 똥 눌때 휴지는 몇 칸을 쓰고 목욕할 때 물은 얼만큼 쓸 것인가를 배우는 일이 가정교육 아닌가.
사용하는 사람도 없는데 하염없이 돌아가는 선풍기, 몸에 비누칠 하면서 샤워꼭지 틀어 놓는 사람.
이게 남탕의 풍경이다.
예전에도 이런 목욕탕 풍경으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목욕탕에서 선풍기를 끄는 건 뒷사람을 위한 예의에 어긋난다는 분위기까지 있는 것 같다.
몸에 비누칠 하며 샤워기 틀어놓는 사람은 젊은이부터 장년까지 나이 구분이 없다.
이런 걸 보면 어려움을 겪으며 자랐다는 장년층도 어려운 시절은 잊으신건지, 아니면 우리집 물이 아니라서 그런건지…
아마 후자는 아닐 듯 하다. 집에서 물 아끼는 사람은 밖에 나와서도 아낀다.
내 돈 나가는 거 아니더라도 반사적으로 흐르는 물이 아까워 어쩔 줄 모른다.
학생회장 할 때 후배들과 가장 치열하게 싸운 문제는…
좀 우스울지 모르지만 과방에 컴퓨터를 사용하고 난 후 전원을 끄고 가는 일이었다.
그해 첨으로 과방에 컴퓨터가 들어 왔는데 후배들이 당최 컴퓨터를 쓰고 끄질 않는거다.
뒷 사람이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물론 후배들도 할 말은 있었다.
컴퓨터는 부팅하는 순간에 많은 전력이 소모 되니까 켜 놓는쪽이 전기소모가 적게 된다는 거다.
물론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건 뒤 사람이 바로 이어서 사용한다는 전제하에 성립된다.
이걸 확실히 하기 위해 컴퓨터 소비전력을 측정해서 재부팅 하는 것과 그냥 켜 놓는 것의 소비전력이 일치하는 시간을 계산하려고도 했었다.
그러다 너무하단 소리 들을까 싶어 그만둔 것 같다.
컴퓨터 켜 놓은채로 가 버리는 후배는 누군지 추적해서 전화로 왜 컴을 켜 놓고 가냐고 항의 전화까지 해 댔으니…
이런 사소한 것들이 결코 지식이 모자라거나 소양이 부족하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다.
몸에 배지 않은거다.
그래서 스무살 넘은 청년들한테 전원을 끄니 켜니 잔소리를 한 거고, 별 소릴 다 한다는 소리 들을지 모르지만 여기서 몸에 배지 못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주제 넘은 짓일지 모르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버릇을 물려주는 것도 선배의 도리라 생각했다.
아유~ 또 개똥철학 이야기가 무거워지네.
사람도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착함을 지킬 독한 것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마치 덜 익은 과실이 자길 따 먹는 사람에게 무서운 병을 안기듯이,
착함이 자기 방어 수단을 갖지 못하면 못된 놈들의 살만 찌우는 먹이가 될 뿐이지요
착함을 지키기 위해서 억세고 독한 외피를 걸쳐야 할 것 같습니다
– 130쪽
“착하게만 살기는 힘든 세상이에요
착하게 살기엔 아픔이 너무 많아요”
가요계 악동이라 불리는 DJ.DOC 의 노래가사의 일부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마지막엔 이런 구절이 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착한 사람이 독한 면 없이 그저 순둥이로 살아간다면 그건 의도치 않게 ‘못된 놈들의 살만 찌우는 먹이’가 되는 세상이다.
착하게 살기 위해서 독해져야 한다.
독하지 않아도 착하게 살 수 있는 세상 만들기 위해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