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난다 재미난다~ 마징가 계보학

마징가 계보학책 제목 : 마징가 계보학
저자 : 권혁웅
정가 : 6000원 (할인가 : 5600원)
출판사 : 창비(창작과비평사)
출간일 : 2005. 09. 30

 

재밌는 시집이다.

고도의 은유도 좋지만 이렇게 재미난 시집, 첫 표지를 열어서 끝 표지를 닫는 것이 한 번에 죽 이어지는 시집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렇게 쓰는게 시라면 나도 한번 써 볼만하다 싶게 만드는 것도 멋지지 않나.(물론 막상 쓰려면 또 어렵겠지만)

 

 

 나의 1980은 먼 곳의 이상한 소문과 무더위,

형이 가방 밑창에 숨겨온 선데이 서울과 수시로 출몰하던 비행접시들

 

 술에 취한 아버지는 박철순보다 멋진 커브를 구사했다

상 위의 김치와 시금치가 접시에 실린 채 머리 위에서 휙휙 날았다

 

 나 또한 접시를 타고 가볍게 담장을 넘고 싶었으나……

 먼저 나간 형의 1982년은 뺨 석 대에 끝났다

나는 선데이 서울을 옆에 끼고 골방에서 자는 척했다

 

 1980년의 선데이 서울에는 비키니 미녀가 살았다

화중 지병(畵中之餠)이라 할까 지병(持病)이라 할까

가슴에서 천불이 일었다

브로마이드를 펼치면 그녀가 걸어나올 것 같았다

 

 1987년의 서울엔 선데이가 따로 없었다

외계에서 온 돌멩이이들이 거리를 날아 다녔다

TV에서 민머리만 보아도 경기를 일으키던 시절이었다


잘못한 게 없어서 용서받을 수 없던 때는 그 시절로 끝이 났다

이를테면 1989년, 떠나간 여자에게서 내가 건넨 꽃은 조화(造花)였다

가짜여서 내 사랑은 시들지 않았다


후일담을 덧붙여야겠다

80년대는 박철순과 아버지의 전성기였다

90년대가 시작된 지 얼마 안되서 선데이 서울이 폐간했고(1991) 아버지가 외계로 날아가셨다(1993)

같은 해에 비행접비가 사라졌고 좀더 있다가 박철순이 은퇴했다(1996)

모두가 전성기는 한참 지났을 때다

 

 

-선데이 서울, 비행접시, 80년대 약전


 

 

1. 마징가 Z
   기운 센 천하장사가 우리 옆집에 살았다 밤만 되면 갈지자로 걸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고철을 수집하는 사람이었지만 고철보다는 진로를 더 많이 모았다 아내가 밤마다 우리 집에 도망을 왔는데, 새벽이 되면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돌아가곤 했다 그는 무쇠로 만든 사람, 지칠 줄 모르고 그릇과 프라이팬과 화장품을 창문으로 던졌다 계란 한 판이 금세 없어졌다


   2. 그레이트 마징가
   어느 날 천하장사가 흠씬 얻어맞았다 아내와 가재를 번갈아 두들겨 패는 소란을 참다못해 옆집 남자가 나섰던 것이다 오방떡을 만들어 파는 사내였는데, 오방떡 만드는 무쇠 틀로 천하장사의 얼굴에 타원형 무늬를 여럿 새겨 넣었다고 한다 오방떡 기계로 계란빵도 만든다 그가 옆집의 계란 사용법을 유감스러워 했음에 틀림이 없다


   3. 짱가
   위대한 그 이름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가 오후에 나가서 한밤에 돌아오는 동안, 그의 아내는 한밤에 나가서 오후에 돌아오더니 마침내 집을 나와 먼 산을 넘어 날아갔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겼다 그 일이 사내의 집에서가 아니라 먼 산 너머에서 생겼다는 게 문제였다 사내는 오방떡 장사를 때려치우고, 엄청난 기운으로, 여자를 찾아다녔다 계란으로 먼 산 치기였다


   4. 그랜다이저
   여자는 날아서 어디로 갔을까? 내가 아는 4대 명산은 낙산, 성북산, 개운산 그리고 미아리 고개, 그 너머가 외계였다 수많은 버스가 UFO 군단처럼 고개를 넘어왔다가 고개를 넘어갔다 사내에게 驛馬가 있었다면 여자에게는 桃花가 있었다 말 타고 찾아간 계곡, 복숭아꽃 시냇물에 떠내려 오니… 그들이 거기서 세월과 계란을 잊은 채… 초록빛 자연과 푸른 하늘과… 내내 행복하기를 바란다

 

– 마징가 계보학

 

캬~ 맛깔난다.

마징가 Z랑 태권V가 싸우면 태권 V가 무조건 이긴다는 이상한 국수주의자들에게 고한다.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는지는 몰라도, 마징가 Z가 훨씬 더 재밌는 만화임에는 틀림없다.

나도 당신들처럼 한 번 단정지어 말해봤음.

 

 

 미키, 밤마다 머리위에서 머리 속에서 놀던

미키, 내 대신 천장에 오줌을 지렸던

그런던 어느날, 장롱을 넣기 위해 천장을 뜯었더니

중원(中原)에 진출한

미키.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시집을 읽던

미키. 옷장을 열면 조그맣고 말갛고 분홍빛을 띤

바글바글한 새끼들

미키, 쥐약을 놓았더니 옛다, 너 먹어라

삼개월된 강아지의 사지를 쫙 펴주었던

미키, 어느 날 화단 뒤에 숨어 오도가도 못하고

뜨거운 물을 흠뻑 뒤집어쓴

미키, 마침내 연탄집게를 입에 물고

대롱대롱 딸려 올라온

그래서 우리에게 막다른 골목이 어디인지

가르쳐준

 

– 미키마우스와 함께


초등학교 때 살던 연립주택은 바퀴벌레는 물론이고 쥐와도 친화적인 곳이었다.

쥐 덫과 쥐 끈끈이, 연탄집게를 동원한 미키마우스 사냥이 전혀 낯설지 않다.

미키마우스를 좋아하는 혜리가 이 시를 본다면 뭐라 할까?

혜리아, 미키도 결국은 쥐야~

(하기사, 그렇게 치면 피글렛도 돼지새끼고 집에서 키우는 햄스터 역시 쥐가 아니고 뭐란 말야)

 

 

 

 

1
 나는 아수라 백작의 팬이었다

고철 덩어리 마징가Z나 봉두난발의 헬 박사,

제머리를 옆구리에 끼고다니는 브로켄 백작 모두 아수라의 매력을 앞설 수는 없었다

아수라는 본래 제석천과 싸운 전투의 신이다

양성구유인 그는 두 명의 성우를 데리고 다녔고

왼쪽에서 등장할 때와 오른쪽에서 등장할 때 다른 목소리를 냈다

좌익과 우익을 그에게서 배웠다

 

2
 그다음엔 헐크가 있었다

약을 지어먹은 데이빗 배너박사는,

그 부작용으로, 분노에 몸을 맡기면 헐크로 변했다

늘 웃옷만 찢어발기는 게 신기했다

긴 대사는 전부 데이빗이 맡았고

헐크는 이두박근 씰룩이며 그저 으르렁 거렸을 뿐이었는데

우리는 그가 나올 때마다 열광했다
안팎의 경계가 거기에 있었다

정장바지가 쫄바지로 변하곤 했다

 

3
 육백만불의 사나이에 관해서도 말하고 싶다

스티브 오스틴 대령은 사고로 한쪽 눈과팔, 두 다리를 잃었다

거액을 들여 망가진 몸을 복구한 후에,

그는 자주 왼쪽 눈썹을 들어올리거나 슬로 모션으로 달리곤 했다

제 안에 제 것 아닌 걸 데리고 사는 사람,

그를 흉내내느라 초당 9.8미터를 더한 속도로 옥상에서 뛰어내린 아이들이 여럿이다

 

4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고 노래했던 시인과 촌장은 한 사람이다

나도 그랬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동네방네 내 이름을 부르며 귀가할 때마다

나는 출가한 붓다였고,
샴쌍둥이처럼 그녀의 몸에 세들어 살고 싶을 때마다 나는 늑대인간이었으며,

출근하기 싫어 장판에 들러붙을 때마다 나는 그레고르 잠자였다

지금도 이 글을 쓰는 나는……이라고 쓰는 나는…….

 

– 모순

 

맙소사~

좌익과 우익의 경계, 안팎의 경계를 보여주는 유익하며 심도 깊은 외화들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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