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지 않는) 좋은선배 증후군

선장의 편지 5번째

쓰다가 자꾸 거대담론으로 넘어가서 다시 당겨 오느라고 애먹었다

처음 생각했던 제목은 ‘좋은선배 증후군’ 이었는데 앞에 ‘분노하지 않는’을 달았다

근데 ‘분노하지 않는 우리’ 라는 주제로도 할 말 많은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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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에서 커피를 눌렀는데 컵에
밍밍한 물, 달달한 설탕, 부드러운 크림만 나온다면?
우린 분노할 겁니다.

왜 쓴 맛을 내는 커피가 안 나오냐고!

네, 우린 그런 식으로 달콤한 선배들만 주루룩 나오는 작금의 상황에 분노해야 합니다.

“밥 사주는 선배 말고, 쓴 소리 하는 선배가 없을 때 신방과란 조직은 끝이다”
– 07년 선장과 최 일등항해사의 대화 中

09학번 아니라 다시 한 세기 흘러 99학번이 들어와도 삼월의 식권 자판기 역할을 기꺼이 청하는 선배들은 영속할 듯 합니다.

반면 시큼 텁텁한 잔반통 역할을 할 쓴소리 선배들은 이미 멸종위기에 처했습니다.

밥 사주고 웃겨주며 좋은 선배 되고 싶지, 쓴소리 신소리 하며 별 이상한 선배로 뒷담화에 오르고 싶지 않은게 인지상정.

바로 여기에 멸종원인과 보호해야 할 이유가 다 들어있습니다.

인기 식권 자판기는 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만 시큼한 잔반통은 기피보직이죠.

하지만 쓴소리한다는 자체가 ‘나쁜선배’의 리스크를 감내할 만큼 후배나 조직을 생각한다는 방증이거든요.

물론 선배가 생각하는 옳은 길이 후배에게도 언제나 옳을 수는 없습니다.

선배의 기준과 후배의 기준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되, ‘의견차이’는 ‘의견없음’보다 낫다는 걸 생각해야 합니다.

90퍼센트가 넘는 찬성률의 북한 정치보다, 망치와 전기톱이 등장하는 51퍼센트 찬성률의 남한 정치가 더 민주적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하나의 의견에 반대 의견이 더해져서 정반합의 변증법적 발전이 가능하다고 믿기에 남한 정치가 더 민주적이며 더 발전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합니다.

음… 이건 사회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라 재미없나요?

그럼,
이승환이 이렇게 노래했죠 “너무많은 이해심은 무관심 일 수도 있지”

선배 된 도리로서 쓴 소리를 두려워해선 안 됩니다!

먼저 온 자, 먼저 안 자, 먼저 느낀 자로서 옳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줄 의무가 있습니다.

저도 천성이 물에 물타는 사람인지라 맘에 품어두다 유통기한을 지나 시큼해진 쓴소리들을 폐기처분 했던 적 많지요.

하고 싶은 말이 턱까지 차 오르다 다시 내려가기 일쑤인데, 그나마 입으로 뱉었던 몇 번의 쓴 소리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그 전달 방법이 좀 더 세련되었더라면’ 하는 반성은 합니다.

과방 정리정돈(청소까지도 아니고)은 당연한 것이고, 함께 쓰는 의자에 발 올리는 것은 무례한 짓이며, 컴퓨터는 쓴 사람이 꺼야함이 마땅하지요.

강의실에서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도 나무라는 선배 하나 없습니다.

한 번은 10명 남짓 듣는 전공수업에 후배들이 하도 안 들어와서 전화 한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은 일주일에 한 번 수업하러 경산에서 오시는데, 예의가 아니다 싶을 만큼 출석율이 저조했지요.

강의실에선 기본적으로 ‘내가 더 편한 쪽’ 보다 ‘남이 덜 불편한 쪽’으로 행동하는게 옳습니다.

한 번은 상의할 게 있어 문자로 후배를 불렀는데 수업 중에 버젓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나무랐던 적이 있습니다.

난 75분 강의를 못 기다릴 만큼 인내가 박약한 사람은 아닌데.

수업 중에 전화기를 꺼 놓는 건 지금 세태에선 무리한 요구일까요?

강의실에서는 자신의 펀의를 위한 행동이 같이 수업 듣는 수십 명의 학습권을 담보해도 될 만큼 불가피한 일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혹은 선배가 일깨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모범적인 모습도 선배의 의무입니다.

4.9제, 5.18, 등록금문제, 학생총회 등등 개그요소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퍽퍽해 보이는 일들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주변에 재밌는 선배, 같이 잘 노는 선배 외에 다른 어떤 선배가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선배인가 생각해 봅시다.

이번 편지는 낯 간지러운 꼰대의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도적으로 치우쳐서 쓰고 다시 균형을 잡지도 않았습니다.

반론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총대와 십자가를 매고 후배님 목에 방울 달러가는 ‘나쁜선배’가 살아남아,
신방과의 미각을 건강하게 유지해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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