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기징역 쯤

노희경 작가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몇 년 전 학과 게시판에서 이 글을 읽었는데 이제 책으로 엮어 나왔다.

일단 읽고 가슴을 치고 한숨을 쉬어야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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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했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 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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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두고 학과 게시판에 쓴 마지막 편지가 ‘계란 후라이 요리법’ 이다.

거기서 말하려 했던게 ‘껍질깨기’. 자기 껍질을 부수지 않고서는 어느것도 이룰 수 없다.

나는 왜 누가 미친듯 그리워 해 주지 않나?

답은 여기있다. 내가 미친듯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미친듯 그리워하지 않았나?

보고는 싶지, 좋아는 하지. 하지만 미칠듯이 죽을듯이 보고싶고 좋아한다고 한 적은 없다.

항상 중간값을 지켜야 한다 생각했다.

도루를 노리는 1루 주자의 딜레마에 빠져있었나 보다.

2루를 향해 길게 리드하고 있으면 도루 확률은 높아지지만 그만큼 아웃 확률도 높아진다.

나는 그저 1루 베이스에 발을 얹고,
“2루에 가고는 싶지, 타자가 크게 한 번 쳐야지 내가 움직이지. 내가 진루 못하는 건 팀의 문제라니까” 를 읊어댔다.

1루에 얹어놨던 발이 하도 오래 지나니까 이제 뿌리로 변해서 땅 속에 박히는 것 같다.

발을 옮기는 건 쉬워도 뿌리를 옮기는 건 어렵다.

이리 어렵게 된 건 내가 사랑했어야 할 대상에 치러야 할 죄값 때문이다.

모범수로 나가야지.

곧,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