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냐?
글을 쓰기 위해 이렇게 형식적인 인사말로 일단 시작해본다.
전역한지 10년 만에 다시 부대를 찾아 가는, 부대 복귀 훈련.
원래 자대에 하나뿐이었던 동기, 너 임마 김 병자임~과 함께하려 했으나,
네 생활이 그리 녹록치 않아 녹록한 나 혼자 갔다 왔다.
가다가 번지점프장이 있길래 차를 세워 한 장 찍었다.
우리 군 생활할 때도 번지점프대가 있었나?
아마 있었더라도 굳이 군 복무중에 강원도에 와서 번지점프를 하진 않았을테지.
그땐 복귀하는 홍천과 원통 터미널이 번지점프대 같았고, 출발하는 버스에 오르면 자유 낙하하는 느낌이었으니.
(근데 번지점프대를 바라보는 것만도 무섭더라야…)
여기다.
휴가 갈때는 한 없이 기쁘고, 복귀 할 때는 한 없이 암울했던 곳.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지만, 지역 경제는 변하지 않더라.
화장만 새로 한 채 골격은 성장하지 못한 그대로 서 있는 터미널.
어딘지 알겠지? ‘신진’이란 후임이 있어 더 기억이 나네.
요즘 휴가나 외박 나갈때는 꼭 저 가방을 메야한다네.
심지어 보급품이 아니라 구입해야 한다고.
군인에게도 최저 시급만큼의 월급을 줘야 하는데… 워낙 비상식의 공간이니까 그 동네…
전경 하나 더 추가해 본다.
내 기억으론 여기 PC방에서 복귀 전에 내 홈피에 글 쓰던 적이 있는데…
10년 지난 후 같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있다.
기억나냐? 우리 간부와 고참들이 ‘원통 화장품 가게 아가씨 예쁘다’고 하던 말.
아마 여기였던 것 같은데…
그 예쁘다던 아가씨는, 아마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거나 했겠지?
터미널 시간표와 요금표인데..
우리는 아마 고참들이 알려주는 시간표를 다 외우고 있었을거야.
이제, ‘어딘지 알겠지’ 따위의 말은 쓰지 않으마.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은 이상 모를리 없으니.
저 여왕벌 간판은 분명 우리가 천도리에 외박 나올때도 있었을텐데…
내가 보내준 부대 정문 사진을 보고 네가 말했지. ‘거기 많이 변했네’
천도리 가게 사진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었어 ‘변하지 않으면 쇠락하게 된다고’
하긴… 변했다는 건 예전 상태와 다르다는 말이니, 천도리 유흥가도 더 쇠락하는 방향으로 변하긴 했지.
웨이트 트레이닝이랑 똑같은 것 같아.
현상 유지 조차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순진하고 감수성 예민하던 현역 시절, 가슴 뛰며 걸었던 천도리 유흥가……
여기 현금인출기 앞에서 타 부대 부사관한테 걸렸던거 기억나?
당시엔 영창 가는 거 아닌가 했네.
번지점프를 하다, 연애소설 등 한국 연애물을 두루 섭렵하게 해 주던 비디오 가게.
8mm VHS테이프는 일생 가장 감수성이 풍부하던 군인 시절을 촉촉히 적셔주었지.
은빛의 애로 비디오는 좀 감칠맛 났던 걸로 기억해.
(물론 빡홍 병장님의 문화 폴더에 비해서겠지)
허…주인이 비디오도 안 팔고 야반도주했나?
예전 생각에 PX갔다가, 군인가족 아니면 여기 못 들어온다 면박 받아서 기분 상했음.
예비군 대우가 이래서야 쯥쯔즈쯔…
우리 병장때 나이 많은 하사관 온 거 알지?
그 사람이 천도리에서 피자를 사 줬는데, 아마 거기가 저쯤인가?
당시 천도리에서 피자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상점이었던 걸로 기억해.
서화리 들어가는 고개에 있는 낙석일거야.
낙석 곳곳에 이런 분칠을 해 놓았더라고.
수달 같은 그림을 그려넣는다거나…
‘모험의 고장’이라니…
저 낙석을 지나 복귀하는 군인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맙소사, 너 여기가 어딘줄 아니?
이건 정말 예상 못할걸.
우리 고정포 있는 곳.(혹은 있던 곳? 이제 박물관으로 옮겼으려나)
원래 그냥 경사진 넓은 밭이었는데, 다 정리해서 무슨 DMZ 학습관 같은 걸로 만들었더라.
DMZ를 테마로 한 것 답게 사람 없고 황량하더군.
예전에 벙커 가던 길 찾아보려했는데, 혼자 가기는 좀 뭣하고 길도 헷갈려서 관 둠.
다음에 같이 한번 가보자.
드디어 도착!
나름 군사시설이니 옆에 아파트만 찰칵!
1개 분대가 밀면 넘어갈 것 같던 아파트는 나름의 리모델링을 했나 봐.
상권은 죽었는데, 유일하게 부대 건물만 증축되었더구만.
어떻게 보면, 천도리보다 더 작은 상권이라 타격 받을 것도 없나봐.
10년 전이랑 크게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았어.
오히려 편의점도 들어서고 한 걸 보면 좀 더 발전했나?
아마….. 여기쯤일 것 같아.
전역식하고, 애들 도열 받으면서 위병소 나가서 서화리 터미널에 갔는데.
차 기다리다 너무 눈물이 나, 뒤로 좀 가자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던 곳.
가을 걷이가 끝난 논으로 기억하는데… 아마 이 근방일 듯.
그때는 정말 눈물샘을 수도꼭지처럼 열고 잠그고 할 수 있었는데.
내 일생에 두 번 다시 그리 치열하게 울 수 있을까?
이사 온 8층 집 수압이 그때 내 눈물샘 같으면 좋으련만…
아까도 샤워하다 좀 짜증났음.
보안을 위해 사진 회전(이 아니고 귀찮아서 보정안함)
우리 병장 때… 미친듯 더운 나날 어마어마한 작업을 했지.
계단도 우리가 만들고
관측소도 우리가 보수하고
경사면의 떼도 우리가 심고
사격도 우리…. 개뿔 실제 여기서 사격은 못 해봤던 걸로 아는데…
아닌가? 한번 했었나??
여기서 작업 마치고 차량 기다릴때였나 식사추진 기다릴때였나,
다른 소대 신병한테 노래 시켰는데 아마 사랑 two를 불렀던 것 같네.
인마살상용 직사화기를 련마하는 사격장에서 사랑 two라니. 케이 two면 몰라
음…… 이게 서화리 넘어가는 낙석인가?
다음에 함께 가서 확인하자.
이것도 한 눈에 알려나?
펀치볼이야.
현역일 때는 못 가본, 을지전망대 가서 찍었다.
우리에게 펀치볼은 농가 대민지원의 산실이었지.
이동거리가 길어 나름 하리였던 곳.
을지 전망대에서 좀 재미난 사진을 발견했는데,
중앙에 있는 사람 김정호 병장 같지 않냐?
뒤에는 빡찬 같고.
너무 느낌이 닮아서 찍어 왔어.
근데 우리 혹한기때 저 설상파카 없었던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두 장의 사진을 첨부한다.
첫 번째는 연대 RCT 훈련때 찍은 거고
두 번째는 그로부터 10년 후, 거의 비슷한 날에 동일한 절벽에서 찍은거야.
당시 RCT가 5월인데 때이른 더위에 끈적이던 전투복과 하이바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해.
천도리가 내려다 보이는 아찔한 절벽에서 황지태 병장이랑 방어진지를 구축하던 장소지.
이 마저도 평화공원으로 만드는 공사를 하더라.
탱크 진지였던 걸로 아는데, 벙커가 공원으로 바뀌면 평화가 찾아올까??
이래저래 바쁘게 움직이다 돌아오니 렌트카 업체에서 주행거리 410km로 찍힌 정산 문자가 왔더라.
추워지기 전에 함께 갈 수 있길…
10년이 지나도 돌아 볼 과거가 건재하다는 게,
그 소식을 나눌 친구가 있다는 게 좋다.
훙~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