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의 정이 없는 휴먼의 ‘사실충실성(팩트풀니스), 이정도면 그냥 AI에게 의탁합시다.

작가 아재요. 고생했심더. 사실충실성이란 주제로 강의도 하고 책도 쓰고 애썼네요.

책 초반부 정답률 보면 수치가 말도 안 되게 낮다. 지금까지는 인간을 계도하고 교육시켜 이걸 바꿔보려 했겠지만. 이정도로 인류가 적극적으로 멍청하다면. 그냥 AI에게 어서 몸과 맘을 맡기는 게 낫지 않을까.

맨날 AI 환각(할루시네이션) 보고 뭐라고 하는데. 인류 평균 환각 보다는 월등히 낫구만.

인간의 진화는 너무 느리고 시대 발전은 너무 빨라서. 그 간극을 이제 맞추기가 너무 어려워졌다. 팩트가 아니라 임팩트에 반응하는 게 인간이고. 이건 그냥 하드웨어가 원래 임팩트 탐지기로 만들어졌기 때문.

허허벌판 맹수한테서 살아남으려면 별 수 있었겠나. 냉장고 나오고 위고비 나오는 시대를 몇 만 년 전에 어케 앎.

맨쉬를 뛰어 넘은 위버맨쉬는 결국 인간이 아니라 AI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바둑으로 알파고 뚝배기를 깰 수 있는 건 알파고를 조수로 활용하는 바둑 기사인 것처럼.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절반으로 줄었다. 가히 혁명적 변화가 분명하다. 나는 이 현상을 내 생애 동안 세계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로 꼽는다. 지구상의 삶에 대해 알아야 할 아주 기본적인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주목하는 본능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작용한다. 하나는 과거를 잘못 기억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언론인과 활동가들이 사건을 선별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상황이 나쁜데 세상이 더 좋아진다고 말하면 냉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가끔 추억보정된 감탄사를 듣는다. 옛날이 좋았지, 그때가 좋았지.

한 개인의 사정이야 옛날이 더 좋았을 수 있지만. 적어도 국가나 인류 차원에서는 현재가 낫다.

현재에 비해 나의 어린시절만 해도 얼마나 야만의 시대였나. 나의 아버지 시대는 어떻고, 전쟁통이던 할머니 시대야 말할 것도 없다.

보정된 과거를 회상하는 현재의 망중한을 존중은 하되, 엄영한 시대의 발전 같은 사실 관계를 왜곡하진 않아야 할 것. 그게 이 책 전체의 주제일지도.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물어보면 거의 항상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대답이 네 가지 있다. 뱀, 거미, 높은 곳, 그리고 좁은 공간에 갇히는 것이다.

근데, 조선 땅에선 두 가지를 더 조심해야 한다. 교통사고와 사기다. 아, 주식도 합법적 사기일 수 있으니 역시 조심해야 한다.

“개선의 정이 없는 휴먼의 ‘사실충실성(팩트풀니스), 이정도면 그냥 AI에게 의탁합시다.”에 대한 1개의 생각

  1. 트레바리 토론하고 나면 일기장에 기록으로 남겨두는데. 이 방에도 공유해 봅니다.

    1.
    68세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한스 로슬링 할배. 평생 사실 사실 부르짖으며 책도 쓰고 전세계 강연도 다녔는데. 한 개인이 자기 소신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하다 간 삶 아닐까.

    역으로, 그렇게 용써도. 인간의 인지 편향은 수만년 이어져온거라 너무 빨리 변하는 현대 사회를 이해하기엔 부적합한게 아닐까.

    결국 AI가 인류 두뇌의 확장으로 나설 수 밖에.

    할배요, 고이 잠드소서. 이제 AI 턴입니더(with HBM4).

    2.
    ‘생각하는게 아니라 느낌을 말한다’.

    이게 어찌보면 당연한거 아닌가. 대니얼 카너먼 아재(이 아재도 돌아가셨네) 시스템1, 시스템2가 이거 아녀.

    시스템 1은 무의식 중에 조건반사 수준으로 나오는 생각. 시스템 2는 이성을 통해 고심 끝에 나오는 생각.

    근데 매번 시스템 2로 사고하다간 들짐승한테 잡아먹힌다고. 풀숲에 뭐가 바스락거리면 일단 튀어야지 그걸 데이터 기반으로 과학, 철학적으로 해부하는 휴먼은 씨가 말라서 번식을 못함.

    편견과 지레짐작이라는게 일종의 캐시 메모리라. 매번 새로 디스크에서 읽어올 필요 없이 짜잔 내뱉는 건데. 이걸 한 개인이 고치는 것도 어려운데. 전 인류가 고친다고?

    정치를 직업 정치인에게 완전 아웃소싱 주는 건 비판할 지점이 있지만, 트럭을 못믿어 인력거에 택배를 맡기는 사람은 없다. AI에게 어여 줄 건 줍시다.

    3.
    기술 발전은 너무 빨라지는데, 이걸 구성원에게 업데이트해 줄 공교육은 너무 느리다.

    촌지 받고 줘 패던 구세대 선생의 문제냐, 어떤 훈육도 불가해 무기력해진 현재 선생의 문제냐. 실은 어느쪽 잘못도 아니지. 더 큰 구조의 문제일 뿐.

    팔란티어 아재가 정치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는데. 거기서 줄기를 뻗어 교육 구조도 바뀔 수 밖에 없을 듯.

    그저 지금은 너무 거대하고 빠른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

    4.
    홍수가 나면 물은 넘치지만 마실 물은 더 귀해진다. 사실(이라고 외치는 것)이 넘치면 진짜 사실을 전하는 사람은 더 귀해진다.

    펙트 홍수 속에선 신뢰가 더욱 중요한 자원. 너무 범람해 진정성 없어 보이는 진정성이란 가치가 인플루언서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된 이유 아닐까.

    5.
    회피냐 결단이냐.

    모호함을 견디는 게 확실한 파국을 맞는 것보다 힘들다. 먼저 맞는 매가 속 편한 것.

    경영학 교과서에 실리는 기업 실패 사례 대부분은. 고난도 문제 풀이의 실패가 아니라, 실은 결단인 척하는 회피를 선택한 경영진 때문일 것.

    6.
    내가 나를 바꾸기도 힘든데, 감히 누구를 바꿀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하지 말 것. 그냥 빨리 AI에게 전권을 위임하자.

    그런 각오로 내달리는게 대단한 히어로나 무결한 정치 체계를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 효율적일 듯.

    7.
    6.25세대도 88만원 세대도 각자의 생채기가 있는 걸.

    우리 할매 이야기 들어보면 기도 안 찬다. 육이오때 세살난 아버지 등에 매고 점심 먹고 피난길 나서니 ‘뺄개이(할머니 표현)’ 폭격에 바로 전까지 점심 먹던 집이 날아갔다는 이야기.

    옆에 있던 동네 할매도 맞받아치는 고난 배틀. 근데 그 당시엔 그게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거 귀찮다 수준으로 다들 겪는 일이더라.

    절대적인 육체적 고충과 안전에 대한 위협이아 어찌 그 세대랑 비할까.

    그럼 88만원 세대부터 이어진 ‘부모보다 못사는 자식세대’ 담론은 투정으로 치부해야 하나. 각 세대는 그 시대 고유의 생채기를 안고 사는데.

    영영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도. 연봉 1억에서 5천으로 깎이는 이직도. 모두 사회적 죽음 같은 깊은 상처다.

    우리 할매도 자식 손자 잘 살라고, 더 나은 땅에서 키울라고 그 포탄 세례 피해가며 살아남은거 아닌가.

    결국은 각 시대의 생채기가 있고, 할매 상처가 크다 한들 자식 손자 생채기가 그걸 보고 절로 낫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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