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모터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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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어느 날, 두류공원에서


 

두류도서관 가는 길에 만난 모터달린 자전거.

요즘은 두류공원에 놀러오는 할아버지들도 오토바이를 타고 오신다.

LED로 오토바이를 휘감고 다니는 간지 옹도 계실 정도니 이런 오래된 모터 자전거는 거의 보기 어렵다.

 

허연 머리 성성한 우리 아버지가 흑발이던 시절.

성인 여드름이 골치인 내가 뽀얗던 시절.

그 시절 아버지가 나를 태우고 달리던 바로 그 모델이다.

모터 자전거에 딱히 모델번호 따위 있을리 없지만, 여튼 바로 그 자전거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아버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셨다.

그러니 마당에 자전거가 서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

 

나를 뒤에 태우고도 많이 다니셨는데 그 중 아직 선명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일거다.

왕복 20차선인 달구벌 대로 반야월 오르막 구간.

나를 태운 채 모터 엔진으로 신나게 달리는데 옆에서 차가 다가와 창문을 내리고 아버지한테 말을 건다.

아마 아버지 친구분들인가 보다.

 

넓은 도로

실컷 달릴 수 있다

차는 빠르다

모터는 힘겹다

아버지는 모터 동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만회하기 위해 페달을 밟았다.

그 땐 아버지도 젊었다.

튼튼한 하체는 유전이다.

 

그렇게 뻥 뚤린 도로에서 몇 마디 안부를 주고받던 아버지와 친구분.

마지막 인사를 건넨 자동차는 보조석 창문을 올렸고 우리를 앞질러 갔다.

 

??

이게 왜 이렇게 슬플까.

어린시절에도 이게 슬펐을까?

그래서 20년이나 지난 일인데 장소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걸까?

 

비록 자동차와 함께 달릴 수는 없지만 아버지의 방랑 동무역을 충실히 해내던 자전거는 나 초등학교 3~4학년쯤에 자취를 감춘다.

사실 그 전에 내가 엉뚱한 호기심으로 자전거 타이어를 식칼로 몇 번 찔러봤다.

왜 갑자기 그런 호기심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위에 사람이며 짐을 태우고도 빵빵한 모습이 신기했던 것 같다.

대단한 녀석이라며 몇 번 찔렀는데 멀쩡했다.

멀쩡해 보이니까 더 찔렀던 것 같다.

그리고…

천천히 바람이 빠졌다 ㅡ,.ㅡ;

 

며칠 후 마당에 자전거는 없는데 아버지가 집에 계신걸 보고 물었다.

“자전거는 어디 갔어요?”

“응, 그거 바람 다 빠져서 누구 줘 버렸다”

 

아…… 태어나서 크게 불효한 적 없다는 것을 효도라 생각하고 사는 나지만, 그 일은 정말 미안했다.

 

“자동차는 남자들의 궁극의 장난감” 이라는 말에 동감하며,

운전면허도 없으면서 자동차 잡지를 뒤적여 신차와 신기술에 열광하고,

만개한 들꽃 이름은 모르면서 어두운 골목에서 전조등만 보고 자동차 모델명을 알 수 있는 평범한 성인 남성으로 자란 나.

지금의 나와 비슷하게 평범했을 젊은 시절 아버지는, 달구벌 대로에서 자동차에 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친구가 자동차 페달을 살짝 밟을때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아야 했을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이었을까?

모르겠다.

난 그 기억에서 다 자란 수컷으로서 서글픔을 느낄 뿐.

 

모터 자전거를 양도(?)한지 한참 지난 후 아버지는 에스페로라는 준중형차를 36개월 할부로 사셨다.

그걸 15년 타고 폐차한 후 다시 대우의 (15년 전에는 대표모델이었던) 슈퍼살롱을 중고로 사셨다.

내가 취업하면 그걸 물려주시고 당신은 짐차를 사서 시골에서 몰고 다니실 거라는데…

아무래도 15년 전 대우의 기함은 20대가 몰 차는 아닌 것 같다.

 

아버지한테 짚차를 사 드리는 날, 열쇠를 건네며 모터 자전거 빵꾸낸거 사과해야지.

 

아버지 그 때까지 조금만……

이히히~

 

아주 가끔씩 길에서 모터자전거를 보면 뒷좌석에 날 태우고 달리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이제는 아버지가 내 뒷좌석에 앉으셔도 되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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