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전 어느날, AI 조울증 증상 기록

2023년 5월 2일, AI 스터디 두번째 모임을 마치고 남긴 후기. 반년 전 후기지만, 당시의 내 심경이나 AI의 발전상을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어서. 이것마저 일종의 기록이다 싶어 남겨둔다.

번개에서 얻은 단상 끄적여 봅니다.

저와 저희 조직은 지금 일종의 조울증 상태입니다. AI가 실무에 잘 적용되면 웃고 안 되면 웁니다. AI라는 망망대해에 빠진 처지라 지푸라기건 스티로폴이건 잡고 떠야하는지라. AI윤리니 규제 같은 거대담론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경주마처럼 시야가 좁습니다. 옆에서 뭐라하건 신경 쓸 계제가 아닙니다.

저는 대책없는 낙관주의자라, AI의 미래에 대해서도 몹시 낙관적입니다(아이러니하게도 제 커리어와 일자리에 대해서만은 좀 덜 낙관적입니다만).

AI가 발달하면 인류는 새로운 카드, 즉 좋은 패 하나를 손에 더 쥐는 거라 생각합니다. 좋은 패를 쥐면 대개 게임을 좋게 풀 수 있지만, 역으로 자만해서 죽 쑬 수도 있죠.

오늘 번개에서 몇가지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특수효과가 너무 저렴하고 뛰어나 이제 엑스트라 자리가 없어질 거다. 고객센터 응대의 상당부분을 AI가 대체하지 않겠냐 등.

직업에 귀천 없다지만. 유독 힘들거나 위험한 업종과 업무가 있게 마련입니다. 한 직무 안에서도 특정 프로세스가 유독 힘들기도 하고요. 과거에는 사람이 했을 각종 어렵고 위험하고 더러운 일의 상당수를 지금은 발전한 로봇과 기계가 해냅니다.

이처럼 발전한 특수효과 덕분에, 더 이상 한 컷을 찍기위해 10시간씩 추운데서 대기하는 엑스트라 일은 필요 없어질 겁니다. 발전한 AI챗봇 덕분에 상담원의 감정노동 상당부분이 덜어질 겁니다.

실제 저희 사업부 중 일부가 상담센터를 운영하는데. 거기 내부 설문을 보면 ‘유선 고객응대가 가장 힘들고 기피’되는 직무였습니다. 여러 내부 사정이 있지만, 각설하면 감정노동이 힘들고 기피되는 업무인 겁니다.

이를 AI 챗봇이나 시스템으로 대체하면 가장 좋아할 사람이 상담 보직을 맡은 팀원일 겁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시스템을 계속 바꾸려고 노력 중이고요.

물론, AI는 좋은 패를 주는 거지 그 자체로 게임을 승리로 이끌지 않습니다. 엑스트라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배우의 꿈을 키우는 새싹 연기자는 감독 눈에 들 기회조차 사라져 버릴지 모르고. 자기 적성에 가장 잘 맞던 상담원 일자리를 다시 구하기 힘들어진 경력단절여성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 절대악 아니면 절대선인 건 계산기 밖 현실에는 없을 겁니다.

다만, 오늘도 오류나는 파이썬 때문에 정시 퇴근을 못해도. 언젠가는 얘가 증기기관처럼 내가 원하는 걸 쉬지 않고 뽑아줄 요술 항아리 되리라 밑고. 그저 나아갈 뿐입니다. 좁은 시야를 감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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