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릴없는 편지

유후~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겨울엔 편이 얼어 못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수취인 불명 반송은 슬퍼요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고시원에는 창문이 없을지도 몰라요 얼마나 많은 날이 가야 하나요 언제쯤 난 괜찮아질까요 일년은 고작 365일 포유류는 오래 살아야 120년 뿐예요 하느님도 외로워 눈물 흘리신다 글쎄, 소개팅이 맘에 안 드셨을까 눈 뜨지마 코 베어 갈지도 … Read more

돈 벌고 싶은 의지가 약해질 때 보는 시

시째냐? 악아, 어찌고 사냐. 염치가 참 미제 같다만, 급허게 한 백마넌만 부치야 쓰겄다. 요런 말 안헐라고 혔넌디, 요새 이빨이 영판 지랄 가터서 치과럴 댕기넌디, 웬수노무 쩐이 애초에 생각보담 불어나부렀다. 너도 어롤 거신디, 에미가 헐 수 읎어서 전활 들었다야. 정히 심에 부치면 어쩔 수 없고…… 선운사 어름 다정민박 집에 밤마실 나갔다가, 스카이라던가 공중파인가로 바둑돌 놓던 채널에 … Read more

눈물은 왜 짠가

지난여름이었습니다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드릴 때의 일입니다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 Read more

단 한번이라도 스스로를 사랑했는가?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 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 Read more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엷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빈 집’——————————————————– 사랑을 잃고 한 달음에 써내려갔다아니, 이건 그냥 추측일 뿐인데 그랬다고 해두자‘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