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반추해 보니 벌써 9년이나 됐다. 처음 사주 명리 공부한 게.
당시 나와 가장 반대에 있는. 즉 기존의 나라면 절대 안 믿을 뿐더러 오히려 혐오했을 기술이 명리다.
근데 그때까지 내 방식대로 해 보니 딱히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싶었고. 그럼 지금까지 내 방식이 틀린 거 아닌가? 이번엔 아예 완전히 기존의 내가 안 취했을 길로 가보자는 맘으로 선택한 거다.
일이 안 풀리니 좌측 손으론 니체를 잡고 우측 손으론 명리를 잡아. 어떻게든 허우적거리며 떠 있으려 하던 시절.
2.
명리를 공부하며 선생 서너분을 만났지만. 내 사주 공부의 시작이자 뿌리는 강헌 선생님이다.
대학로 인근 오프라인 강의. 회사 업무 끝나고 매주 그 먼 길을 어떻게 운전해 찾아갔는지. 지금 생각하면 용하다. 그때는 체력 좋았구나 싶기도 하고.
사주 엠티를 가면 정말 오롯이 12시간 이상 사주 풀이를 해 대는데. 진짜 말하는 게 천직이자 타고난 사람이라고 밖엔 할 수 없다. 이건 체력이 아니라 기질의 영역이라 느꼈다.
하지만 이미 그때도 건강이 괜찮으신가 싶을 정도였으니.
3.
고등학교 때 본 전교조를 소재로 한 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 감독이 강헌 선생님이란 걸 알고 놀랐던 기억.
영화, 음악, 축구, 와인 등등 해박한 영역이 넓고 깊은, 사주로 치면 식신의 정점에 있던 분. 끊임없이 떠들 수 있는 지식도 능청스러움도 대단하다.
4.
강헌 선생님은 뜻하지 않으셨겠지만, 내게 두 가지 반면교사를 주셨다.
첫번째는 전문가의 한계. 강헌 선생님이 대중음악 팟캐스트에서 ‘케이팝의 한계’를 말하는 대목이 있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데. 대략 ‘케이팝 잘 올라왔으나, 그건 한국의 경제력과 함께였으며,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어찌보면 그 당시 전문가들의 정론 같은 이야기를 했더랬다.
지금 돌이켜보면 명백히 틀린 예견이었으나. 과거 흐름을 너무 잘 아는 전문가의 한계였겠지. 당시 케이팝과 한류가 여기까지 오리라 예견하는 전문가가 있었다면 업계에서 비웃음 당해 오래 활동도 못했을 것.
두번째는 마이너의 한계. 강헌 선생님은 누구에게 사사받지 않고, 교보문고에서 명리 관련 책을 지인한테 다 사서 보내라고 하면서 독학으로 시작하셨다.
그래서 기존 학파와 다른 독자적인 부분이 있는데. 이게 양날의 검이다.
내가 찾아 간 다른 명리학자도 ‘강헌 선생의 명리 역사 정리는 탁월하나 명식 해석엔 치명적 문제가 있다’고 하셨는데.
배우는 내 입장에선 둘 중 어느 말이 맞는지 판단이 어려우나. 독자적인 학파는 새로운 시각을 줄 수도 있지만 주류에 비해 모자란 부분도 필연 따라온다.
요즘 세상엔 독고다이의 한계가 명확하다. 절에 들어가 사시 공부하면 정보력 부족으로 탈락하는 세상이다.(사시가 없어졌다는 것 자체가 정보임)
5.
명리 수업 동기 중에는 인상 깊은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반장 분은 한 남자와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한 이력이 있었고. 우리 선배 기수 중엔 ‘성리학’인 줄 알고 잘못 들어왔다가 성실하게 수료하고 간 공무원도 있었다.
명리 강연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뭐였을까. 세세하게는 그때 공부했던 노트를 더듬어봐야겠지만.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결국 어떻게든 인간은 살아보려고 나름의 수를 써본다. 용써본다는 거. 그래서 사주에서 열쇠라 할 수 있는 용신이라는 것도. 결국은 용 쓰면 된다는 것(마지막은 나의 해석)
6.
강헌 선생님 라디오 명리 팟캐스트 들으며 걸었던 걸음이 수백만보, 시간이 수백시간쯤 될 것. 그만큼 걷고 듣고 머리를 굴렸는데. 나의 세상살이 통변은 좀 나아졌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