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고을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서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분단에 의해 묻혀진 세계적인 천재시인 백석’
이라고 시집에 적혀는 있으나

세계적인 천재라면 이 작품을 여러 외국어로 번역해서 세계에 내 놓아야 할 터인데

과연 백석시인의 작품을 각국 외국어로 얼만큼 잘 번역할 수 있을까

나도 첨 보는 단어들이 시에 이렇게도 많은데, 그것은 어려운 사자성어나 고어가 아니라 우리 할머니나 들어 보셨음직한 누렇게 세월에 바래진 단어들이다.

그러니 단어를 해설하기 위해 각주가 안 달린 시가 거의 없다.

자자~ 각설하고,

백석 시인의 시집 제목이자 시의 제목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이 시의 주제는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순수한 자의 꿈’

허나 이건 수능치는 수험생을 위한 해설이고,

내가 이 시를 연습실에 끄적거려 놓은 이유는 바로 첫 번째 연 그 하나 때문!

사실 이 시를 알게 된 건 신방과 85학번 신동호 선배님 덕분이다.

‘선배와의 대화’ 시간에 동문회장님이신 신동호 선배님이 백석시인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 싯구를 언급하셨거든

그 중에서도 이 첫번째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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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니
나타샤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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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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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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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   아아아~ 범상과 비범은 이렇듯 엎치락 뒤치락 관계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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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 바람이 불어오니
그대생각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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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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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대를 사랑하니
산들 바람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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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배치의 미묘한 차이가 이렇게 큰 감동의 차이를 만들다니!

이래서 천재인가!   이것이 범인과의 격차인가!

아아~ 백석을 사모하는 여성들이 그리 많았다고 하니 그를 좋아했던 여성들도 필히 그 순간은 행복했을 것이며 그네들 맘에 눈이 내렸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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