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직접 찍은, 올 한 해 가장 기억 남는 한 컷을 제출하시오’
연말 모임에서 이런 요청이 와서 사진 폴더를 뒤졌다. 단 한장만 선정했지만, 다른 것들도 나름의 의미가 있어 정리해 둔다.

엄청나게 더웠던 날의 임장이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단지. 아파트 이름이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 된 곳. 압구정 현대 아파트.
그곳에서 직접 찍은 복덕방 매물 게시판이다. 65평이 130억에 팔린다. 그리고 나중에 들어보니 실제로 130억에 팔렸다더라.
몇 년 후에, 혹은 몇 십 년 후에 이 가격표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비트코인과는 다르게, 워낙 절대액이 높아서 ‘그때 사둘걸’이란 생각은 하기 어렵겠네.
그 뜨거운 한여름 날에, 그보다 뜨거운 호가를 보고. 이런 하나의 사료라는 생각이 들어 찍어둔 한 컷. 한 낮의 기온은 정반대로 차가워졌지만, 압구정 아파트 값의 열기는 식지 않는다.

회사 다닐 땐 전시회니 박람회니 참으로 무관심하게 지냈다. 백수 시절을 거친 덕분에 이런 저런 모임과 전시회에 다녀보게 됐는데. 단연 올해의 최고 전시회가 아닌가 한다.
3D 안경처럼 한때의 유행이라 생각했던 VR. 실은 상당히 폼이 올라온 걸 체험하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우리의 감각이라는 게 참으로 간사하며, 시각에 많이 의존한다는 데에 새삼 놀랐다.
‘쿠푸왕의 모험’ 전시에서 일종의 스포라 할 수 있는게 이 한 컷인데. 텅 빈 공터에 VR을 쓰고 각자 피라미드를 체험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그 자체가 거대한 물음이다.

괭이갈매기. 너무 흔해서 탐조인은 딱히 관심을 두지 않는 새.
올해, 탐조를 취미로 삼았다기엔 어폐가 있고, 탐조인을 여러 번 따라다니며 맛을 봤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
대개의 수집 취미가 그렇듯. 남이 보지 못한 희귀한 걸 보고 체험하는 수집하는 걸 높게 친다. 그러니 새도 희귀한 새일 수록 좋은 것.
그런데, 흔해 빠진 괭이 갈매기를 좋아한다면. 좋아할 수 있다면. 실은 그게 더 좋은 거 아닐까? 어지간히 좀만 둘러보면 좋아하는 게 여기저기 있잖아.

이 사진을 보자. 고민 없이. 단연코. 올해의 한 장이 정해졌다.
너무 많은 말이 떠올라 쓸 수가 없어 줄인다. 더 긴 시간 살아내며 돌아볼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