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누군가에게 연탄 한 장 되는 것

또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한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안도현, 연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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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던 ‘너에게 묻는다’ 에 이어, 연탄을 소재로 한 시리즈 3부작의 두 번째 시다.

처음엔, 단 세 줄로 준엄한 훈계를 내리던 ‘너에게 묻는다’를 길게 늘어 쓴 시인가 보다 싶었는데…

안치환이 이 시를 가지고 만든 동명의 노래를 계속해서 부르다보니 또 다른 감동이다.

삶이란 나 아닌 누군가에게 연탄 한 장 되는 것.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불이 붙으면 뜨겁기가 하염없으며
한 덩이 재로 남겨지고도
산산이 으깨져
미끄러운 아침을 붙잡아주네

한 덩이 재로 쓸쓸히 남는게 두려워,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 자처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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