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그리고 가질 수 없는 너

마을의 공동 수도에서 목을 축인 뒤

수도꼭지를 잠그려는데 잘되지 않았다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하고 내리누르기도 했지만

졸졸 떨어지는 물줄기를 막을 수가 없었다

많이 흐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놔둔 채 떠날 수 없어

나는 계속 잠그려고 했다

그래도 낡은 수도를 갈 수 있는 인물인데

몇년 만에 찾은 고향에서 수도꼭지를 잠그는 동안에도

나는 배운 사람이라고 어깨에 힘을 주었다


그때 이웃의 할머니께서 다래끼를 허리에 매고

자박자박 걸어오셨다

어렸을 때 나를 업어주기도 한 분이셨는데

다래끼 안에는 상추가 병아리들처럼 소복이 들어 있었다

나는 손님을 끌기 위한 가게 주인처럼 얼른 다가가

어디를 다녀오시느냐고 여쭈었다

이놈의 날씨 뒈져뿌러라

할머니는 내 인사의 답으로 한바탕 욕을 해대면서

두꺼비 같은 눈으로 웃으셨다

그리고 수도꼭지를 틀어 목을 축이고 나서 곧바로 잠근 뒤

다시 자박자박 가셨다


아무렇지도 않게 수도꼭지를 열고 잠근 할머니의 모습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나도 해볼까, 또 물이 흐를까 겁이 나 틀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마을의 주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서서히 들었다


– 맹문재 ‘주인’, 시집 ‘책이 무거운 이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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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 오랜만이다.

시 카테고리에 새로운 시를 올리는 게.

그 만큼 각박했다.

시간은 남아 돌았으되 시 한편 읽을 맘의 여유가 없었다.

그런 여유가 생긴건지, 억지로라도 만들려고 노력한 건지 몰라도 여기 그동안의 침묵을 깨는 시 한편 있다.


나는 용을 써도 안 되는데

어디서 느그적느그적 걸어와 그녀의 맘을 쉽사리 열었다 잠궜다 하는 그를 보면.

정말 주인이 따로 있나.

나는 그녀의 주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서서히 들었다.


* 시의 마지막 줄을 차용해서 느낌을 표현해 봤다.

하지만 누가 누구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노노노 노노노노~(리쌍의 ‘떠나가지 못하는 여자 헤어지지 못하는 남자’ 톤으로)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의 멜로디를 좋아하지만 잘 부르지 않는 이유 역시 그 제목과 가사 때문

가질 수 없는 너라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유하려 드는 자체가 내겐 가질수 없는 생각이다.

‘함께할 수 없는 너’라고 했다면 노래의 감흥이 떨어졌을까?


여튼, 내 맘대로 짠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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