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저자 : 함민복
정가 : 7000원 (할인가 : 5600원)
출판사 : 창비(창작과비평사)
출간일 : 1999. 06. 01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 가을
맙소사,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다니!
시에 대한 감탄을 고작 동어반복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이 답답함
이미 함빈복 시인의 시는 내 ‘시’ 폴더에 두 개 올라가 있다.
눈물은 왜 짠가 http://wakesori.cafe24.com/3395
선천성 그리움 http://wakesori.cafe24.com/3353
이제 다른 시를 소개해야지.
시(詩)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긍정적인 밥
시집 한 권과 영화 한 편의 가격은 거의 같이 움직였다.
이 생각을 한 게 시집 가격과 영화 입장료가 4500원인 시절부터였을거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 영화 한 편 가격이 시집 한 권 가격을 앞질렀다.
시집은 영화와 달리 가격이 일률적이진 않지만, 특별히 화보를 넣거나 해서 꾸미지 않은 책은 정가가 7천원인데 영화는 8천원이다.
천만명이 본 영화는 쏙쏙 나오지만 천만명이 산 시집이나 천만명이 암송하는 시가 생겼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
천만 명 중 10분의 1인 백만명 만 영화관 대신 서점 시집코너로 발길을 돌린대도 우리 사회가 좀 더 긍정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달빛 찬 들국화길
가슴 물컹한 처녀 등에 업고
한 백리 걸어보고 싶구랴
– 농촌 노총각
현대의 결혼 못하는 3대 직업
– 스님, 신부 그리고 농촌 총각 ㅠ.ㅜ…
파리는 내가 덮고 자는 공간을 깔고 잔다
날개 휘젓던 공간밖에 믿을 게 없어
날개의 길밖에 믿을 게 없어
천장에 매달려 잠자는 파리는 슬프다
추락하다 잠이 깨면 곧 비행할 포즈
헬리콥터처럼 활주로 없이 이착륙하는 파리
구더기를 본 사람은 알리라
왜 파리가 높은 곳에서 잠드는가를
저 사내는 내가 덮고 자는 공간을 깔고 잔다
지구의 밑부분에 집이 매달리는 시간
나는 바닥에 엎드려 자는데
저 사내는 천장에 등을 붙이고 잔다
발 붙이고 사는 땅밖에 믿을 게 없다는 듯
중력밖에 믿을 게 없다는 듯
천장에 등을 붙이고 잠드는 저 사내는 슬프다
어떤 날은 저 사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늦게 거꾸로 쭈그려 앉아 전화를 걸기도 한다
저 사내처럼 외로운 사람이 어디 또 있나보다
– 오래된 잠버릇
파리의 눈으로 바라본 사내
전화하는 모습마저 초라해져 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