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풍경을 나는 사랑하려 하네(-55)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책 제목 :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저자 : 안도현
정가 : 8900원 (할인가 : 4360원)
출판사 : 이가서
출간일 : 2006. 06. 12

어느 분야건 문외한이 입문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고수의 추천을 접하는 것.

여기서 도현이 형의 노트를 슬쩍 엿봐야징~

오랜 세월 헤매 다녔지요

세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그대 찾아

부르튼 생애가 그믐인 듯 저물었지요

누가 그대 가려 놓았는지 야속해서

허구헌 날 투정만 늘었답니다

상처는 늘 혼자 처매어야 했기에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흐느낌

내가 우는 울음인 줄 알았구요

어찌 짐작이나 했겠어요

그대 가린 건 바로 내 그림자였다니요

그대 언제나 내 뒤에서 울고 있었다니요

– 강연히, ‘월식’

마흔 살을 불혹이라던가

내게는 그 불혹이 자꾸

부록으로 들란다 어쩌면 나는

마흔 살 너머로 이어진 세월을

본책에 덧붙는 부록 정도로

여기는지 모른다

삶의 목차는 이미 끝났는데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덤으로 사는 기분이다

봄이 온다

권말부록이든 별책부록이든

부록에서 맞는 첫 봄이다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 좀

있어야겠다

– 강윤후, ‘불혹, 혹은 부록’

천재들의 업적은 대게 20, 30대에 다 이뤄지거나 일의 모양새가 갖춰진다나.

마흔에 벌써 삶의 목차가 끝났다는게 일면 수긍이 되기도 하면서,

그럼 20년은 대략 사회가 키워주고 나머지 20년은 사회에 환원하고

마흔이 되면 빚도 저축도 없는 상태에서 오롯이 내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닐까.

본 책의 편집 방향과는 약간 별개인, 별책 부록으로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 김준태, ‘감꽃’

‘세다’는 동사로 과거-현재-미래를 담백하게 보여주는 기법이 놀라워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의 밑바닥을 핥고 또 핥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 번 핥다가 그만둘까 싶었으나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 번은 더 핥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내 밥그릇을 핥아보았나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먹어보았나

개는 내가 먹다 남긴 밥을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없이 다 먹었으나

나는 언제 개가 먹다 남긴 밥을

맛있게 먹어보았나

개가 핥던 밥그릇을 나도 핥는다

그릇에도 맛이 있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 정호승, ‘밥그릇’

이웃 세대에서 얻은 귤을 까다 약간 짓무른 부분이 있어 떼어 내 버렸다.

순간 참…

나도 많이 헤퍼졌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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