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은 토막난 순대처럼 운다’, 권혁웅

지금 당신은 뼈 없는 닭갈비처럼 마음이 비벼져서

불판 위에서 익고 있지

나는 당신에게 슬픔도 때로는 매콤하다고 말했지

당신이 생각하는 그이는

이미 오이냉국처럼 마음이 식었다고 일러주었지

그이를 한입 떠 넣는다고 해서

당신 마음의 뼈는 돌아오지 않는 거라고

닭 껍질처럼 오돌토돌한 소름은

숨길 수가 없는 거라고 얘기했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앞치마를 두른 채 조금 튄, 당신의 슬픔을 받아내는 일

당신은 없는 그이를 생각하고

나는 고구마와 함께 익어가는 당신을 생각하고

그렇다면 우리의 삼각관계는

떡, 쏘시지, 양배추, 쫄면으로 치장한다고 해도

그냥 먹고 남은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나는 조금 속이 타서 찬물을 마셨지

나는 당신 앞에서 물먹은 사람이 되었지

그것도 쎌프써비스였지

– 춘천닭갈비집에서

연포당 속의 낙지가 앗 뜨거, 앗 뜨거 하면서

냄비 바깥으로 손을 뻗는다 아니, 발이었나?

잠시 후면 두 손 두 발 다 들고

쫄깃한 육신을 탕 속에 흩뿌릴 테지만

그전에 프리즌 브레이크

파이널 씨즌을 시도하는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탈출을 꿈꾼 적이 있었지

멸치육수가 흐를 듯 후덥지근한 숲 속 빈터였다

뼈도 연골도 없이 그녀에게 매달렸지만

그녀가 앉은 벤치는

나박나박 썬 무처럼 너무 담백했다

우리 그냥 친구 하자고

우정이 애정보다 좋은 열구자기 이유를 말하는

그녀의 입은 청양고추만큼이나 매웠다

냄비 속 연옥을 빠져나갈 수 없음을 느끼고

낙지는 마지막 먹물을 뿜는다

눈앞이 캄캄해진 내게

슬라이스로 썬 마늘을 투척하는 그녀
이게 남자한테 그렇게 좋다네

우정과 정력의 모순형용 앞에서

후후 불며 나를 들이켜는 그녀와

두 손 두 발 다 들고

파와 마늘 사이로 숨는 낙지와 나와 쑥스러운 쑥갓과

연포탕에는 그렇게뿐이 모여 있었다

– 두 손 두 발 다 들고

시집 정보: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327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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