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
어떤 춤이든 유래와 생성배경이 존재합니다.
어떤 사상이나 이론, 발명품들이 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로요.
몸짓이 왜 등장했는가?
재영이가 친절하게 꼬리를 달아줬으니 인용하겠습니다
‘노동자농민 그리고 통일을 꿈꾸며 치열하게 권력에 대항해왔던 우리 선배님들의 표현’
몸짓은 민중가요와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 할 수가 없습니다.
북두가 동요에 맞춰 몸짓을 한다면 그것은 율동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민중가요, 그것도 몸짓이 들어가는 민중가요는 왜 생겼는가?
노둥자, 농민, 통일 문제를 화두로 삼는 운동권(넓은 의미로 생각해 주십시요)의 강력한 무기가 바로 민중가요입니다.
노래와 춤은 정서적 파괴력이 막강한 무기입니다.
누군가는 음악을 합법적인 마약이라 했습니다만 전 춤도 거기에 포함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학생 운동권 힘이 다 소진되어 가는 지금에서도 소위 빨간 사상이라 불리는 마르크스나, 5.18 광주항쟁 등은 몰라도 흥겨운 민중가요 몇 소절과 바위처럼 등의 몸짓으로 새내기부터 저~ 위 헌내기까지 어울릴 수 있는 것이지요.
지금은 시대가 변했습니다.
죽창이니 쇠파이프가 동원되는 과격시위라 해도 전국 곳곳에서 화염병과 최류탄이 난무하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서문시장 근처(그곳이 정확히 서문시장 이었는지도 기억 안나요)에서 화염병과 최류탄 난무하던 시위를 본 게 마지막이었으니 지금 새내기들은 안방에서 걸음마를 연습하던 시절이었겠네요.
자, 그럼 시대가 변했으니 이제 몸짓도 민중가요도 노동자 농민 통일이야기는 유행지난 옷을 입는 것처럼 꼴불견이 되어 버렸다는 말을 할까요?
정~ 반대입니다.
이젠 한 발짝, 아니면 반 발짝이라도 떨어져서 그 가까운 과거를 되새김질하며 평가해 볼 수 있지 않나요.
우리나라 역사 교과에서 근대사, 근현대사 부분이 너무나 미흡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현대사가 고대사보다 현재 정치세력의 입김 등으로 고교 과정에서 자세히 다뤄지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겠지요.
그렇다면 고교에서 미처 못 해줬던 부분을 대학교에서 해야 하는게 아닙니까.
대학생이
그것도 사회 현상을 연구하는 사회과학도가!
더더구나 그런 사회과학의 첨병 역할을 하는 언론학도가!!
학기 초에 작년 북두짱과 올해 북두짱을 만나서 이야기 했던 적이 있습니다.
너희가 하는 몸짓에 담긴 의미를 아느냐?
학생운동 하던 시절이 아니니 화염병을 던지고 죽창을 들라는게 아니다.
너희들이 하고 있는 동작에 담긴 의미를 알아는 봐야 하는게 아니냐.
영혼이 없는 조직은 기업이든 모임이든 지속될 수 없다.
철학이 결여된 북두칠성이 앞으로 얼마간의 생명력을 가질 것이며 어떤 의미를 줄 수 있겠는가.
내 생각에는 몇 년 후면 자연소멸 될 것이며 그렇다고 그것이 슬프거나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북두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몸짓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것인지는 안다.
하지만 새내기 시절 그냥 신나고 흥겨워 보여서 들어왔던 북두에서 그런 이념적인 것들을 받아들이려니 아이들의 거부감이 강하게 일었다.
그래서 우리는 친목도모라는 하나의 목표를 설정하고 존재한다.
이념이 없고 철학이 없다고 하지만 친목도모라는 형태로 변형된 북두칠성이 되려 생명력이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단대 몸짓패 희망선언은 작년 가을 사람이 부족해서 자진 해산했고 선동의 성향이 짙던 바리케이트라는 몸짓패는 그보다 일찍 해산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 화염병 시위의 추억이라고는 초등학교 때 매캐한 냄새를 피해 집으로 뛰어 들어가던 그 날이 마지막이었으며, 대학교 집회라고는 금오공대 다니던 시절 기웃거려본 경험과 굳이 더 짜내자면 고등학교 때 시민단체 사람들과 친분이 있었다는 정도입니다.
북두칠성을 서두로 해서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북두칠성의 존폐나(감히 제가 언급할 부분이 아닙니다) 나아갈 방향이 아닙니다.
2000년대 후반 학번들이 대부분 느끼는 운동권에 대한 앨러지 반응.
정말 정면돌파해서 파고 들어야 할 부분은 바로 그 딱히 이유 없는(적어도 저는 논리적으로 분석해 낼 수 없는) 운동권과 감히 좀 더 넓히자면 현대사에 대한 앨러지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현대사를 알아야 하고 학생 운동이 무얼 하려는 것인가와 그런 가장 최근의 역사를 또 왜 알아야 하는지까지 늘어놓으려면 어설픈 글에 논문처럼 양만 방대해질 것 같아 일축하겠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왜 화염병을 들지 않느냐고 다그치는게 아닙니다.
사회과학도, 신문방송학도라면 그 까닭모를 앨러지를 정면돌파 합시다.
swot 분석과 스트레이트 기사작성, 영상문법을 이해하는데만 신문방송학도의 자질이 국한되는것은 아닙니다.
술자리에서나 이어질 법한 두서없이 이어지는 생각창고의 짐들을 재영이의 꼬리글 부분을 다시 인용하면서 끝맺습니다.
“ 이제 학생운동도 많이 변하였지만 몸짓에 담겨있는 그 의미…늘 정의를 향해 달려가는 정신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하네요..적어도 우리 북두안에서는요.. ”
우리 북두, 우리 신방에는 그 의미나 정신이라는 것을 되돌아 보려는 이 있습니까?
박준희 | 머리속에 가둬만 두던 생각이라 글의 흐름이나 단어 선택에서 오해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겠습니다.
얼마든 수정할 수도 보충할 수도 있으니 이런 좋은 화두를 곱씹어 보았으면 해욧! |
2007-05-10 2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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