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재배 인턴기] 2. 회식

엔지니어링 센터에서 유일하게 회식 못 한 인턴이라며 불평했었는데, 며칠 전 부서 회식이 아니라 정말 회를 먹는 회식을 가졌다.

 

이곳 엔지니어링 센터는 지역사회에 기여한다는 의미로 죽도시장에서 한 달에 한 번 장보기 행사를 가진다.

오후 4시 반에 출동해 장 보고 일찍 퇴근해 가족과 보글보글 오순도순 즐거운 저녁 되시라~~~

하는 좋은 취지이지만,

조기퇴근에 대한 압박도 있고 다수 직원이 자취 형태라 딱히 장보고 할 필요가 없어 그냥 요식행위로 김이나 쥐포 한 봉지 사고 횟집으로 향하는 회식자리가 만들어진다.

고작 한 번 따라가 봤지만 이 정도는 눈치코치로 이해하지.

 

여튼, 간소한 장보기가 끝나고 횟집에서 술이 여러 순배 돌며 이야깃거리가 잔과 함께 채우고 비워졌다.

자식 취직얘기, 필리핀 유학 보내면 놀다 온다더라 하는 얘기, 포스코 건설 주식 20만원으로 만들어보자! 이런 얘기.

 

참고로, 포스코건설이 이번에 주식시장에 상장 하는데 상장 전 우리사주형태로 직원들이 청약할 수 있는 물량이 있다.

마침 내가 인턴 입사하는 날이 청약 신청 마지막 날이더라고.

공모가가 10만원이 넘어서 직원들도 꽤나 부담되는 금액인 듯.

술자리에서 나온 ‘우리 회사 주식 20만원 만들어보자’ 는 말은 열심히 일해서 두 배 더 좋은 회사로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

 

그런데 회사 ‘주가’가 두 배로 뛴다고 두 배로 좋은 ‘직장’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어.

오히려 주가 변동 폭이 클수록 차액실현을 노리는 뜨내기 주주들이 달려들어서 벌어 놓은 거 이익배당으로 내 놓으라 큰소리치면 기술개발이나 직원 복지 등에 사용할 돈은 줄어드는 거거든.

주가와 직장의 질은 반드시 비례관계인 건 아니란 것.

물론 주가가 상승하면 우리사주를 구입한 직원의 자산도 증가하지만, 망할 자본주의 시스템은 산뜻하게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진 않더라~ 하는 아주 긴 참고용 이야기.

 

여기는 다시 (생선)회식 자리.

아무래도 인턴인 내가 낀 자리다보니 우리나라 취업난 이야기가 나왔다가, 자식 취업 걱정에서 세계의 직업 교육 문제까지 한 바퀴 순회하고… 또 몇 순배 잔을 돌리다 마지막엔 정치 이야기가 나왔다.

MB가 되더니만 포항이 확실히 길은 잘 닦인다는 이야기.

4년 중임제 이야기 등…에서 강력 차기대선주자 박근혜 등장!

여기서 한 분의 확고한 선언적 발언.

박정희 죽고 나서 꼬불쳐 둔 돈 없나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았는데 하나도 못 찾았어


 

이 때 불쑥 끼어든 내 한 마디

육영재단 있지 않습니까


……(시선이 모이는 중)

 

지금 영남대 재단도 사실상 다시 박근혜 손에 들어갔습니다.

의식 있는 학생들이나 교수들은 어떻게 학교를 다시 그 손에 넘기냐며 반대하기도 하지만 박근혜에 빌붙어 커 보려는 사람들은 환영하기도 하더라고요

 

……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 내가 술 얻어먹고 있는 이곳은 TK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제 전환!

 

근데, 저희 학교에 몇 년 전에 박근혜씨가 강연 왔는데. 우와~~

사실 박근혜씨의 정치적 견해엔 동조하지 않지만 정치인으로서의 매력은 대단하더라고요!

 

‘그 배우 연기는 못 하지만 얼굴은 예쁘더라’ 하는 이 시대엔 어째 칭찬이기도 한 이야기로 말꼬리를 돌렸다.

제길! 먹이를 주는 손은 물 수 없는 법.

 

직원 분들은 내가 괜찮다며 가을 산행도 가자시는데…

전 매주 주말 ETS와 기타 사교육 기관에 돈과 시간을 상납해야 청년실업 100만 대열 탈출티켓 발급에 쥐꼬리 가산점이나마 받을 수 있기에 일정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란 말을

‘하하~ 그러지요’ 라는 말로 달리 표현했다.

전달….. 안 됐겠지?

 

대학 다닐 때 현직 CEO 강사가 강연 와서 이런 말을 했다.

수십억 투자가 회의실에서 고심 끝에 결정되는 것 같지만 실은 룸에서 양주 주거니 받거니 하다 결정 나는 것도 비일비재 하다.

 

술 못 마시면 기자생활 어떻게 하냐는 내 질문에 기자 선배는 깔끔하게 답했다.

못 해


그렇다. 수십억대 프로젝트도 특종기사도 술을 안 먹고는 남들보다 힘든 거다.(혹은 불가능한 거다)

 

‘알고 보면(이는 곧 술 한 잔 해보면) 나쁜 사람 없다’는 말이 우리학과에 유행하던 적이 있다.

혈액에 알콜을 흘려 넣어 만취상태로 만들지 않고서는 진심을 나눌 수 없을 만큼 각자의 벽이 견고한 사회인가?

직장생활에서 술자리가 얼마나 큰 비중을 갖는지 새삼 느낀다.

회식 문화, 일의 연장인 술자리 문화엔 일장일단이 있어 없애니 살리니 한 쪽을 주장하고 싶진 않아.

다만, ‘알고 보면 나쁜 사람 없다’의 ‘알고 보면’이 ‘술 한잔 해 보면’이 아니라 ‘차 한잔 해 보면’ 정도로 수위가 낮아지는 건 발전이라 생각해.

 

이상 난초인턴의 첫 회식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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