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재배 인턴기] 3. 이사

어제 이사로 내 숙소는 다운그레이드

언제쯤 만나려나 나의 그레이스

앞날은 꾸물꾸물 클라킹 레이스

 

이틀에 한 번꼴로 주인을 찾아가 부탁에서 요구, 다시 항의로 변해갔던 나의 투쟁이 깃든 J모텔이여 안녕~

어떠한 투쟁이었으며 어떻게 좌절되었는지 잠깐 정리해 보자.

 

1. 임계점 근처에서 왔다갔다 하는 온수 온도

고유가 시대긴 하지만, 영업하는 모텔에서 이렇게 온수 온도에 야박할 수가 있나.

약간 쌀쌀하긴 한데 그렇다고 항의하긴 뭣한!

딱 그 임계점의 온수가 나온다.

 

그런데 새로 이사간 여관은 그 보다 더 찬 것 같은데…

건설현장 일로 돌아다닌 여관은 모두 여름이나 겨울이나 뜨거운 물 촬촬 나왔건만.

이 동네는 온수 인심이 야박하군.

 

2. 부팅에서 메일확인까지 10분 걸리는 컴퓨터

맙소사!

이건 정말 아니잖아.

원래 컴퓨터 없는 방은 한 달 30, 있는 방은 35만원 인데 흥정에 흥정을 거쳐 컴퓨터 있는 방 32만원에 입성.

 

허나 웬걸!

첫 날엔 마우스가 없어 못하고 (스피커 고장은 덤)

둘째 날은 인터넷 선이 고장나서 못하고

주말이라 기사가 안 와서 그냥 보내고

다섯째 날은  연결된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못했다. 다운속도 최대(아주잠깐) 100kbyte, 평균 40kkbyte 였다.

 

그나마 알약을 10분 넘게 다운받다가 70%에서 파일 대신 다운창이 다운 되는거다.

도저히 쓸 수가 있나! 이래선 20세기 화려했던 최고급 56.6kbps 모뎀과 다를 바 없잖아!

 

이렇게 한 일주일을 매일 같이 찾아가 고쳐달라 사달라 하다가, 이런 컴퓨터를 가지고 이력서를 쓰고 주식 홈 트레이딩 서비스를 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 여기고 근처 게임방에 가서 해결했다.

 

이건 아니잖아!

주인한테 전화해서 도저히 안 되겠으니 컴퓨터 빼고 2만원 돌려 달라고 했더니 주인 said,

“그럼 그 동안 컴퓨터 쓴 거 계산해서 만원은 빼고 만원 돌려줄께, 그리고 그 방은 원래 컴퓨터 있는 방이라서 빼는 건 안 되고 아지야가 3층으로 올라가”

 

오우! 워어~ 한 2초간 망설였어…

사용하기는 커녕 퇴근 후 안락해야 할 자유시간에 매일 같이 컴퓨터에게 스트레스를 받은 대가로 만 원을 내라니!

똥컴 스트레스로 인한 똥독 위자료를 지급하진 못할망정!!!

게다가 컴퓨터를 옮기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짐 싸서 올라가야 한다니.

하기사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거니까 똥컴도 더러워서 피한다 쳐.

정말 아주머니의 후안무치한 비즈니스 마인드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생각했지, 어차피 일주일간 겪어보니 더 이상 답이 안 나오는 상대다.

이 아주머니와 세상의 상식과 숙박업의 상도를 놓고 토론하는데 정력을 소모할 바엔 other과 others 의 차이점을 암기하는데 쓰는게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만한 정력이면 4대강 사업 반대 삼보일배에 나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I said,

“아, 됐습니다”

That`s OK 

 

 

그리고 25만원에서 흥정해 23만원에 들어간 새 여관

 

방을 보여 주시며 도배하고 처음 사람 받는 방이라고 자랑하는 아주머니

창가에 가서 반쯤 열린 창문을 닫으려는데…

창문이 미동도 하지 않는다.

ㅡ,.ㅡ…

 

도배를 새로하고 몹시도 오랫동안 사람을 받지 못한 방이었다.

 

들어가서 짐을 풀고 하얀 수건이 검은 수건 될 때까지 바닥을 청소했다.

침대 시트와 욕실에는 하루살이의 시체가 군데군데 널부러져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여기가 7만원이 싸! 일주일 생활비야! 사고싶은 책 7권은 살 수 있어

 

그렇게 위로하며 시트를 털고 뒤짚어 깐 채 깔깔한  이불을 덮고 첫날밤을 보냈다.

 

전보다 10분 일찍 일어나 더욱 느긋한 아침.

콘 프레이크 사은품으로 받은 멍멍이 밥그릇 크기의 플라스틱 접시에 콘프레이크와 우유를 비벼서 젓가락으로 떠 먹으며 오늘은 숟가락을  좀 융통해 봐야겠다 생각했다.

 

tvn에서 미칠듯이 자주 틀어주는 리쌍의 신곡을 들으며 출근준비.

… 드라이기가 없군…

괜찮아, 자연건조 해도 충분하잖아. 드라이기 바람 모발 건강에 안 좋대.

 

오늘은 날씨가 풀린댔으니까 가벼운 차림으로 여관을 나섰지.

전에는 회사까지 1분씩이나 걸리던 거리가 이제 10초면 돼.

아마 사무실에서 먹고자지 않는 이상 내 생에 이렇게 회사와 가까운 숙소는 다시 없을거야.

 

응, 살만 해. 그리고 즐길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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