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단상_10년도 더 된, 아니 10년이 지나서야

군대 전역 후 비닐하우스 건설 현장에서 만난 형이 있다. 당시 그 형 나이가 서른 초중반쯤, 전역하고 바로 현장일하러 온 나를 꽤 좋게 봐 줬다.

알바가 끝난 후에도 종종 나를 불러 대구 시내에서 술을 사 주기도 했고, 가끔 늦은 시각에 우리집에 전화도 했다.(당시 나는 휴대폰은 물론이고 삐삐도 없었다.) 여자도 아니고 뭔 남자 동생 집에 밤 늦게 전화를 하나 이상하다 싶었지만, 이제와 생각하면 견디기 힘든 아픔을 아무 상관없는(혹은 아무상관없기에) 나라도 붙잡고 하소연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최정예 산악 육군’이라는 복무시절 구호를 진지하게 지니고 다니던 예비군 1년차였던 당시의 나는, 타인의 슬픔을 알아차리는 섬세함이 턱없이 부족했다. 강원도 산악 지형처럼 투박한 돌덩어리였던 거다.

어느 날 약간 취기가 오른 형이 해 준 이야기다. 얼마 전에 예전 여자친구 집에 전화를 걸었단다. 신호가 몇 번 가고 ‘여보세요‘하는데 전 여자친구 부모님이었다네. 그래서 그 형이 ‘아무개 잘 있습니까‘했더니, ‘그래, 결혼해서 잘 지내네‘ 라고 했단다.

결혼이란 화두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던 20대 중반 시절이지만, 이야기가 주는 슬픔의 무게가 예사롭지 않았다. 아직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 형의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선하다.

부모님과 서로 알 정도면 꽤 깊이 만났을텐데, 왜 결혼까지 이어지지 않았는지. 혹은 전 여자친구가 다른 사람이 생겨 바로 결혼을 하게 된 건지. 그런 건 전혀 묻지도 않았다. 그걸 캐물을 만큼의 관심도 없었지만, 슬픔의 무게만큼은 느껴졌다.

요즘, 10년도 더 지나서야 그 때 그 형의 슬픔이 흑백에서 컬러로, 수채화에서 유화로 다시 채색되는 것 같다. 껍질이 깨져나가며 타인의 아픔을 조금 더 공감하게 된 걸까.

그 형은 전 여자친구가 결혼했단 걸 알고 전화를 건 걸까, 혹은 모르고 그리움에 혹은 외로움에, 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건 걸까. 어느 쪽이든 너무 가혹해 상상의 진도가 안 나간다.

어쩌면 10년도 더 전에, 그 형은 내게 이런 감정의 씨앗을 심어 두려고 나를 눈여겨 본 건 아닐지, 저 차돌멩이 같은 놈에게도 아픔, 애잔함, 맘 대로 안 되는 일, 절망적 상황. 이런 것들의 예고편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닐지.

그 형은 특전사 출신이었다. 군에 있을 때는 못 할 것이 없고 안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수컷이었는데. 맘 대로 안 되는 결혼을 맞닥 뜨리고 어떻게 변했을까. 지금은 자기 삶을 지키기 위해 누구를 상대로 어떤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을지.

뜨겁다. 발아한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기 좋은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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