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상을 지내고] 슬픔과 기쁨, 사는것과 죽는것이 멀리 떨어져 있는것이 아니더라

저번주는 지리산으로 출동하는 신방과 모꼬지

모꼬지 마지막날 텐트를 걷고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친구 휴대폰으로 우리누나의 문자가 왔다.  집에 일이 있으니까 빨리 연락하라는…

전화해보니 외할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하루 지난 밤에서야 도착한 장례식장

영전에 향을 피우고 술잔을 채우고 절을 하고 다시 상주한테 절을 하고

첨 해보는 상가집 의식

나에겐 외할머니지만 우리 어머니에게 ‘엄마’라는 사실을, ‘엄마엄마~~’ 울면서 외치는 울 어머니를 보고 새삼 깨달았다

삼일째는 탈상하는날

장례식장에서 관을 싣고 나와, 사고가 났던 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외가에 가서 치장한 상여를 메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젤 앞에는 깃대를 든 사람, 그 뒤에는 영전사진을 든 나, 그 뒤에는 화려하게 불교식으로 치장된 상여를 멘 상여꾼들, 마지막으로 상여꾼들을 먹일 술과 음식을 실은 차량과 우리 친척들

외가에서 산소까지 상여를 메면서 끌면서 꽤 긴 거리를 갔다.

가는 도중 다리가 나오면 어김없이 멈춰서서 상여꾼들은 기름이 떨어졌느니 노자가 떨어졌느니 하면서 쉬고 노자돈을 받아갔다.  함 파는 사람들이랑 비슷하달까?

다리에서 멈추는 이유는 아마 요단강과 관련이 있는것 같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한 번 건너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강

그 강을 우리 외할머니 ‘옥동댁이(좀 더 원어 발음에 가깝게는 옥동띠기)’는 건너셨다. 옥동댁이란 말은 할머니가 옥동이란 동네에서 시집을 오셨기에 제2의 이름으로 불리는(사실 이름은 불릴 기회가 없기에 우편물에서나 외할머니의 성함을 확인한다) 명칭이다.

묘지는 할아버지 산소 바로 밑인데 상여를 끌고 가기엔 경사가 심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노자돈을 받았으니 힘을 내야지.

하관을 하고 떼를 심고… 마지막으로 절을 하고 식이 모두 끝났다.

산소 밑에는 외할머니의 영정이 차려져 있어서 거기서도 조문객을 받았다

조문객이 오면 절을 하고 상주는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하고

바로 몇 발자국 뒤에는 출장뷔페 음식을 먹으며 그동안의 소식을 나누며 웃는 친척, 친지들이 있다.

장례식장에서도 마찬가지.

아이고~ 하며 곡하는것이 거짓된거냐? 간만에 만난 친척들과 이야기 나누며 웃는것이 거짓된거냐?

설정된 희극의 한 장면 같아 보이지만 내 생각엔 어느 쪽도 거짓이 아니다.

숱한 시간을 같이 했고 자신의 뿌리였던 한 분이 요단강을 건넜으니 슬프고 서럽고 안타까워 하는것이 이상하지 않고,  그 분이 가시는 마지막 길에 핏줄로 인연으로 얽힌 사람들이 다시 만났으니 즐겁게 나눌 이야기도 있지 않겠나

어쩌면 외할머니가 어른으로서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건 아닌가 싶다

이러고 보면 장례식장이 하나의 가르침을 주는것 같다

-슬픔과 기쁨이 영전과 출장뷔페의 거리만큼이나 가깝다

-죽는것과 사는것이 영전과 절하는 조문객과의 거리만큼이나 가깝다

이제 외할머니는 관절염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흙으로 돌아가셨지만 외할머니가 남기신 핏줄 들이 그 날 모여들지 않았나. 이제는 우리가 외할머니 몫까지 지고 산다

슬픔과 기쁨, 사는것과 죽는것이 몇 발자국, 몇 촌각 사이에 있다는걸 배우면서

2 thoughts on “[외할머니 상을 지내고] 슬픔과 기쁨, 사는것과 죽는것이 멀리 떨어져 있는것이 아니더라”

  1. 그로부터 16년 후인 2022년 3월 24일 오후 9시. 외할머니의 사돈. 친할머니가 오래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다. 16년이란 시간 더 산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혹은 더사고 덜 사는게 딱히 이렇다할 일이 아닌건지 모르겠다.

    나는 16년 전에도 이미 삶과 죽음이 대단찮게 붙어 있단걸 알았나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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