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에 내가 뱉은 말 (2004년 10월 25일, 전역을 명 받던 날!)

각 중대마다 전역자에 대한 고유한 전통이 있을테지

우리 부대는 전역 전 날 내무실에서 가장 막내한테 전역신고를 하고 전역날 아침에는 중대원들을 모두 모아놓고 중대사열대 위에서 전역사를 하는게 전통이다

내 전역식날 중대원들의 도열 모습은 사진게시판에 올라와 있지롱~

어느덧, 바야흐로, 시나브로……  좋든 싫든 기쁘든 슬프든 전역 2주년이 되었다.

전부터 전역식날 전 중대원들에게 했던 전역사를 글로 남겨둬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더 이상 활자로 안 남겨두었다간 내 대뇌피질속에서 영영 사라질 것 같아 이제 진짜로 손가락을 움직인다.

중대 막내 – ‘중대~~애 차렷’   짬밥 안 되는 것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생목소리로 갈라지듯 앙칼지게 내뱉는 구호

‘충 성!’

나 – ‘충성’  후임병의 경례에 거수경례로 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진지

막내 – ‘전역사’

나 – ‘부대 열중쉬어’

막내 – ‘부대 열중~ 쉬어’

드디어 전역사를 시작하는 나!

(사실 처음에 뭐라고 운을 땟는지 기억이 안 난다)

[ 대현이(내 유일한 동기)랑 자대 첨 왔을때 중대 서열이 나 135위, 대현이 136위였는데 그 때 고참들 전역사 하는거 보면서 내 차례가 오기나 올까 싶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 다 밀어내고 이제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다.

이등병시절 3소대 화장실 끝사로에서, 자대배치받고 첨 받은 훈련소 친구 편지를 읽으면서 울었다. 그 친구나 나나 군생활이 캄캄하고 앞이 안 보여서 편지를 움켜쥐고 울었었다.

그런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섰다.

지금 중대 막내가 서열 몇 위인지 모르겠지만 너희도 분명 이 자리에 설 날이 온다!

군대는 전쟁을 준비하는 곳이지만 사회는 전쟁을 치르는 곳이라고 들었다. 그동안 군대에서는 중대장님이나 소대장 부소대장님같은 간부님들이나 고참들이랑 같이 전쟁을 준비해 왔었지만, 이제 사회에 나가면 모든것이 새롭게 시작된다.

동료도 준비도 나 혼자 새로 시작해야 된다는 생각에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이다.

(여기서 뭔가 더 부연 설명이 있었는데… 흠…)

말을 좀 더 이어가다 더 준비한 말이 있었음에도 불고하고 목이 턱 막혀오면서 눈에 수분이 치고 올라온다.

젠장…

이른 아침에 나 때문에 시간내서 모여줘서 고맙다

멋진 남자가 되라!

이상 ]

중대 막내 – ‘중대 차렷’

‘충 성!’

‘음,  충성’

그리고는 중대사열대를 내려왔다.

이어지는 중대원들의 박수

뒤이어서 군생활의 절대 대부분을 같이 한 낌대의 전역사를 듣고 싶었으나, 1소대장이 자꾸 사회나가서 뭐 할거냐고 묻지 눈물은 흐르지, 귀에는 아무것도 안 들어왔다

전역사를 마치고 중대막사에서 위병소까지 중대원들이 도열을 해준다.

소대원들은 위병소 바로 앞까지 배웅해주고

도열해주는 중대원들 하나하나 손이며 팔이며 목이며 부여잡고 얼마나 울어댔는지 모른다.

그 동안 서운한 맘을 품고 있었던 후임병도 그 날 하루만은 내가 그냥 무조건 미안했다는 말이 나왔다. 1퍼센트의 가식도 없었다.

몸뚱이뿐 아니라 순도 100프로 진심으로 끌어안았다.

마지막 위병소 차량 저지선을 넘어서면서

중대 최고참 박준희 병장과 김대현 병장은 그동안 그들을 따라준(설령 뒤에서 어떤 뒷담화를 깟대도) 소대원들에게 마지막 경례를 한다

아, 그 날 위병소를 나가서의 풍경은 대현이랑 나만 알지

고무패킹이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억지로 꾹꾹 누르지 않고 조금만 힘을 빼면 눈에서 물이 콸콸 흘러내렸다

아아아~~ 2004년 10월 25일, 가을걷이가 끝난 강원도 들판을 보면서 뭐가 그리 서운하고 무어그리 아쉬웠는지……

군대와 관련된 명언은 정말 숱하게 많다.

그 중에서 99.99퍼센트의 예비군들이 동감하는 말이 ‘ 한 번은 가 볼만한 곳이지만 두 번 갈 곳은 못 된다’ 가 아닐까

그래, 내 한 평생에 두 번은 못 간다. 허나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군대를 갈테다

20대 초반의 다이아몬드보다 귀한 시간에 어떤 경험이 좋고 어떤 경험이 나쁘다는 식으로 저울질 하고 싶진 않다

허나, 난 2년 1개월동안 내 평생의 에너지원이 될 플루토늄과 평생 세공해야 할 다이아몬드 원석을 가져왔으니 대체 어디서 이런 자원을 또 얻는단 말이야!

2년전에 내가 중대원들에게 뱉은 마지막 말.

멋진 남자가 되라는 일갈에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수 있나

우리보다 7개월 밑이었던 우직한 부산남자 하수환이 생각난다.

유격장에서 전역신고를 해야했던 그 녀석

유격장 위에서 중대원들에게 이렇게 외쳤단다

8중대! 사랑한다~~~~~!

제기랄! 하수환, 너 뿐만 아니라 내 군생활 전부를 사랑한다!

“2년전에 내가 뱉은 말 (2004년 10월 25일, 전역을 명 받던 날!)”에 대한 1개의 생각

  1. 아이고 기묘중씨야~~ 전쟁 터져서 2주 훈련받고 전방 배치 될지도 모른다. 빨리 가서 병기본이라도 익혀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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