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빚지고 있습니까?

BMW 1억5,053만원, 토요타 1억3,841만원. 외제차 메이커들의 신차 가격인가? 하지만, 메르세데스 벤츠 1,492만원, GM코리아 0원이라는 대목에서 그 추측은 설득력을 잃는다. 위의 수치는 6월자 신문에 난, 외제차 업체들이 작년 한 해 우리나라에 환원한 금액이다. 초라한 사회환원금액에 비해 국내 부자들을 상대로 벌이는 명품 마케팅 비용은 수십 수백억에 이르며 이렇게 해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수천억에 달한다. 외제차 업체들은 상류계층이 누리는 고급 기술만 들여왔지, 그 차를 소유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과 같은 고급문화는 함께 들여오지 않았다. 호화 세단의 뒷자리 진동안마 기능은 들여오면서,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가져야 할 나눔의 정신은 옵션으로 빼 버렸다.

문화나 정신은 빼고 기술과 제품만 가지고 오는 것이 차량뿐이랴.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교육을 벤치마킹한다고 야단이다. 몰입을 넘어 무아지경을 바라는 듯하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을 좇아서는 바퀴 달린 값비싼 쇳덩이를 수입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서구 복지국가의 교육제도를 왜 우수하다고 하는가? 이런 나라에서는 국가의 지원으로 경제적 어려움 없이 고등교육까지 마칠 수 있다. 이렇게 길러진 인재가 사회에 진출했을 때 어떤 마음을 가질까? 이제까지 사회가 나에게 베풀었으니 갚아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자연스레 싹튼다. 고등교육을 마칠 수 있게 된 것을 사회로부터 진 빚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에 빚진 자를 만드는 것이 이들의 교육철학이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개인과외, 그룹과외, 예체능과외……. 올림픽 종목보다 많은 과외를 섭렵. 소 팔고 집 팔아 등록금마련. 취업 3종이니 5종이니 화장품 선물 세트보다 화려하게 채워진 이력서. 그걸 만드느라 대학 4년을 5년 6년 늘려가며 몸 팔고 혼 팔아 취업. 나를 기준으로 앞과 뒤만 보이는 일직선 세상을 달리니 옆을 돌아볼 새가 없다. 학자금 대출 말고는 빚진 게 없다. 빚졌다고 생각할 틈이 없다. 직선 그래프의 영점 좌표에서 멀어지기 위해 잠을 줄이고 허릴 졸라맸다. 이제 사회로부터 거둘 차례다. 사회로부터 돌려받을 것만 남은 빚쟁이를 만드는 것이 우리네 교육이다.

하지만, 대학생인 당신은 이미 빚진 자다. 삼월의 촉촉한 흙 없이 뿌리 내리는 나무가 어디 있으며 오뉴월의 뙤약볕 없이 영글어가는 과실이 어디 있는가?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 받았고 그로인해 사회 활동의 폭도 넓다. 장학금이나 인턴 등의 직간접적인 혜택도 받는다. 예전보다 대학생이 많아 졌다는 것은 이 사회가 더 많은 나무를 키우고 있다는 뜻이다. 곧 사회에 빚진 자가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네 교육은 하늘위로 가지를 뻗는데 집중한 나머지 우리가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과 주변의 고마움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우뚝 솟은 인재만 키우려는 교육이 환원을 모르는 사회를 만들었다.

우리 세대에서 시작하자. 지금 이 곳에서 시작하자. 선배의 밥, 교수의 술, 모두 공짜가 아니다. 내리사랑이란 이름의 빚이다. 사랑받은 사람이 사랑할 수 있다, 감동받은 사람이 감동시킬 수 있다. 그리고, 빚진 사람이 더 큰 빚을 지울 수 있다. 거름은 풍족한 땅을 만들고, 빚진 자는 풍성한 사회를 만든다.  훗날 더 많이 돌려주기 위해 더 많이 빚지고, 또 후배들에게 빚 지우자. 아름다운 채무는 우리세대의 의무다.

“걱정돼요, 우리가 받은 만큼 새내기들한테 해 줄 수 있을지…”
올해 초에 만났던 2학년 후배의 입에서 싹이 트는 향기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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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신방과 신문학회에서 일 년에 한 번 발행하는 ‘한소리’ 에 실릴 기고문

편집국장 후배한테서 원고 청탁이 들어왔지.

욕심은 났지만 2000자 안에서 하고 싶은 말 다 하는게 힘들어 조금 망설였다.

졸업을 앞둔 요즈음. 내가 하는 모든게 학교에서의 마지막 일이 된다.

마지막 벗꽃, 마지막 방학, 마지막 낙엽… 마지막 기고

그 마지막 지면을 나에게 허락해 준 편집국장의 성은을 감사히 받아들이며

머릿속으로 늘 생각했던 주제를 꺼내서 휘휘저어 보긴 했는데…

내 역량의 부족으로 2000자 안에 오밀조밀 풀어낼 수가 없었다.

원래 머릿속으로 구상, 초안, 퇴고까지 수십번 하면서 정작 펜을 들고는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 모양새인데, 이번 글은 군데 군데서 바리케이트를 만났다.

글 전반부는 등록금 투쟁할 때 생각한 것들, 후반부는 선배님들한테 술 얻어 먹으러 다니면서 깨달은 무언가.

이렇게 어설프게나마 둘을 용접해서 하나의 고철이 됐다.

포스코네 철은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인다’는데, 내가 만든 고철도 소리없이 후배들을 움직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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