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베토벤’을 죽이지 않았다

어느 의과대학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질문을 했다.

“한 부부가 있다.
남편은 매독,
아내는 폐결핵을 앓고 있다.

이 가정에는 아이들이 넷 있는데,
하나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아이들도 결핵으로 누워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이 부인은 현재 임신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러자 한 학생이 “낙태수술을 해야 합니다.”하고 소리쳤다.

교수는 “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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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나 기타 포털에서 한번쯤 접해봤을 이야기

이 이야기는 영국에서 처음 시작 됐다는 행운의편지 만큼이나 변종이 많다.

베토벤이 5남매 아닌 9남매였다, 아버지 아닌 어머니가 매독이다.

먼저 난 형제들은 귀머거리, 장님, 소아마비, 천식을 각각 앓고있다(이게 제일 강력한 듯) 등등등…

종교적 신념 등을 배제하고 보통의 의학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낙태를 생각하기 마련이다.(초반 전제가 그걸 강하게 요구한다)

하지만 의대 교수는(이야기에 따라 직책이 바뀌기도 한다) 응당 그러할 법한 결론을 내린 우리에게 ‘베토벤을 죽였다’고 말한다.

뭐지?

아버지가 매독, 어머니가 결핵, 5번째 태어나는 아이가 베토벤으로 자라는 것과의 인과관계가?

그런식으로 치면 포항이 고향인 아버지와 경주가 고향인 어머니 사이에서 셋째로 태어날 아이를 낙태하면 경북대 신방과 ‘박00’을 죽인셈이다.

당최 전제와 결과의 이 어마어마한 갭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쓸데 없을수도 있지만 좀 더 머리를 혹사시켜 보자.

명제가 참일경우 그 대우도 반드시 참이 되어야 한다.

이건 중학교 수학교과서 앞부분에 나오니까 고등학교 집합과 함께 다들(심지어 나조차도) 익숙하다.

위 명제의 대우는 베토벤이 아닐경우 아버지는 매독이 아니고 어머니는 결핵이 아니고…. 해야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매독이고 어머니가 결핵인 일련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베토벤아닌 일반인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위의 사례를 ‘베토벤의 오류’ 라고 한단 걸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보며 알았다.

전에는 이 사례를 보면서 딱히 따져보지 않았거든.

논리적 필연성을 생각하기 보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기적같은 희망이 있기 마련’이란 의미로 받아들이니까.

실제로 베토벤 이야기를 스크랩 해 간 많은 싸이월드 사용자는 그런식의 희망이야기로 생각했을테지.

자, 별로 중요하진 않지만 이 사실을 덧붙이며 끝내자.

베토벤은 5째도 9째도 아닌 둘째였고 형이 신생아일때 사망해서 사실상 장남이었다.

베토벤 아버지가 매독이었단 증거는 없고, 어머니는 나중에 결핵으로 사망했지만(당시 결핵은 현재의 암처럼 흔한 사망원인) 임신당시 결핵이었단 증거는 없다.

이미 전제와 결론의 연결고리가 어긋나 버렸기에 전제의 사실여부를 따지는건 뭣하게 됐다.

오오~ 나는 베토벤을 죽이지 않았다.

베토벤을 볼모로, 정당한 의심과 타당한 논리를 죽이지 말 것.

“나는 ‘베토벤’을 죽이지 않았다”에 대한 1개의 생각

  1. ‘만들어진 신’ 에선 기독교가 낙태반대의 <논리>로 이 오류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일화가 아닌 논리로! 사용하고 있다는게 중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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