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심리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완석이랑 만나면 나의 심리상태가 주 화제거리다.
하여튼 스물 여남은 살까지 연애 못 해 본 경우는 연구대상감이란다.
그래서 완돌이 석사 끝날 때 까지 연애불능자면 졸업논문 대상이 되어 주기로 했지.
아마 대학 3,4학년 때 쯤 완돌이랑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돌 – 형은 뭔가 어긋 나려는거 알아?
*이 때의 어긋남은 대인관계에서의 투정이 아니라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의 의미
준 – 응, 그럼 안 돼?
돌 – 그럼 형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 예를 들어 가족이 힘들어 지는게 보통이거든.
준 – 음… 그럴지도 모르겠네. 근데 난 그냥 어긋나며 살래.
역사를 보면 똑똑한 사람은 세상을 지속시키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변화시키잖아. 혹시 내가 세상을 바꿀지도 모르지.
돌 – 하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신영복 교수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라는 책을 읽다가 이 상황을 떠올리게 만드는 대목을 만났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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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은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당신이 먼저 말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앚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영합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세상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법이지요. 그나마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것은 세상을 우리에게 맞추려는 우직한 노력 때문입니다.
-신영복,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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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소리를 듣는 이들은 굳이 자신을 인정해 준 주류 사회를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왕은 계속 유아독존으로, 백인은 계속 우월한 인종으로, 투표권은 남자에게만 허용되는 권리로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터.
세상의 변화는 항상 예상치 못했던 것들의 반격에서 시작됐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처럼 모두가 비주류가 되어서도 안 되고, 오직 하나의 주류로 인해 비주류가 박멸 되어서도 안 된다.
배추는 따꼼따꼼한 김장소금과 함께 김치로 익어가는 법.
세상을 썩히지 않고 발효시킬 어리석은 사람이 설 자릴 마련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