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선이를 만났다.
언제 처음 만났는지 확실히 기억난다.
05년 복학 첫 해 MT 장보러 간 칠성동 이마트에서 첨 봤다.
그 때 성준이형이 미선이 이름이 갑자기 기억 안 난다며 내게 살포시 물어봤었는데, 나 역시 처음 보는 아가씬 걸~
그리고 06년 이후 햇수로 3년을 못 봤으니까, 보고 지낸 기간보다 못 보고 지낸 기간이 더 길다.
15개월 간 동남아시아 일주를 하고 돌아와서 한국에서도 한참이나 비정규직 일꾼으로 일하다 며칠 전에 연락이 왔다.
동화사를 가잔다?!@?
자기가 아는 스님이 있다고!!!
이럴 수가, 성당이랑 교회 아가씨 만나려고 성경 공부는 좀 한 적이 있어도 스님을 만나자니.
여튼 저튼 간만에 백수 소풍가는 기분으로 계란도 삶고 김밥도 사고(싸고가 아니다) 쿨피스도 챙겨넣은 후 동화사로 향했다.
럴수가!
입장료 2500원… 뭔가 부조리하다 생각했지만 입장료는 미선이가 냈다.
미선이가 팬클럽을 조직하려고까지 했다는 그 쌍꺼풀이 인상적인 남자 스님의 법명은 ‘상정’이었다.
팬클럽 이름을 인지상정으로 하려고 했다나?
내가 스님보고 미선이 한테 역마살이 낀 거 아닌지 봐달라 그랬다.
스님도 2주 후에 호주로 또 떠난다는 미선이를 좀 말려보라 그러시더군.
그래, 이제 여기서 이 글의 핵심 문장이 나온다.
밑줄을 그어야 한다.
“하하 네, 작년에 미선이가 여행에서 돌아왔단 소릴 들었을 때만 해도 만나면 이렇게 말해야 겠다 생각했죠.
여행도 좋지만 이제 할 만큼 했으니까 남은 대학공부 마치고 취업 준비해서 자릴 잡아라. 한 없이 떠돌수는 없지 않느냐.
그런데 막상 제가 백수 5개월차 쯤 되니까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는데 소위 말하는 주류의 삶, 대학을 제때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서 결혼하고 애를 낳는… 그런 방식의 삶도 있지만 개인이 원하는 다른 방식의 삶이 있다면 누구든 강요할 권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세, 다수, 주류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선한 개념은 아니다.
되려 다수라는 이름으로 소수에게 폭압이 행해지는 일도 부지기수.
소수민족, 소수의견, 비주류문화.
다수와 다를 뿐 틀린 것이 아냐.
미선아, 너희 세 자매 중 제일 예쁘다는 첫째 언니 소개도 안 시켜주고 또 훌쩍 떠난다니 유통기한 지난 요쿠르트 마냥 내 맘이 시큼하구나.
비교적 주류안의 비주류 길을 가는 내게, 당찬 비주류의 삶을 종종 들려주렴.
삶이란게 굽이치는 강물과 같아서 언제는 좁은 여울목이었다가 또 언제는 드넓은 삼각주였다 왔다갔다 하겠지.
어느 곳을 흐르든 고이지 말고 썩지 말며 건강하여라.
다시 돌아 왔을 땐 너희 첫째 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