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설레게 하는 그 무엇이 있나요

간만에 몸을 떨어대는 내 휴대시계


“준희 전화 맞나요?”

문자란 것이 도착했다


“정확합니다”

반가운 맘으로 답장을 했다.

 

이번에는 같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뉘실까?

 

여보세요~

– 야, 나야 준건이!

 

어어!

 

때는 바야흐로 영남고 2학년 시절

학교 강당 2층 세면 바닥에 장판 한 장 깔아놓고 비공식 댄스 동아리를 만들었다.

이름하야 강당크루!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건 순전히 내 생각이었는데, 누구나 유추할 수 있듯이 강당 2층에서 연습하니까 강당크루였다.

당시 트렌드에 맞춰 세이클럽 동호회도 하나 있어야겠다 싶어, 학교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후배들한테 말했다.

‘야, 세이에 우리도 동호회 하나 만들어야겠다. 오늘 내가 만들 테니까 가입해라. 이름은 강당크루’

아직도 주소가 기억난다.

sayclub.co.kr/gdcrew

물론 세이클럽의 가세가 기울면서 동호회 폐지 정책과 함께 우리 동호회 사이트도 사라졌다.

 

중학교 때 영턱스 클럽의 나이키(가위차기) 춤에 영감을 받아 시작한 나의 브레이크댄스 인생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청소년 문화센터에서 마련한 짤막한 과정의 댄스반을 수강하면서 급진전 하게된다.

그 곳 사람들과의 만남은 단순히 춤 실력 뿐 아니라 지금의 인생관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됐지.

 

대구가 전부터 문화의 불모지긴 했지만 당시 브레이크 댄스 분야는 상당히 앞서있었다.

그만큼 고수가 많았다.

pc통신을 통해 대구 출신 고수들의 전국 무대 무용담을 듣고 흥분하기도 했었고.

근데 그 전국구 무대는 주로 나이트였던 것 같다.

지금과는 달리 비보이가 공연문화로 정착되기 전이니까.

나이트에서 몇십대 2로 쇼다운을 벌였는데 어쩌구…

 

지금은 인터넷이 빨라서 동영상 자료 구하는 게 별거 아니지만 당시엔 세계 브레이킨 고수들의 자료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pc통신을 통해 라디오트론 96이라는 자료를 구입했는데, 1시간이 좀 넘는 이 비디오가 끝나고 가만 놔두니 모노노키 히메의 월령공주란 애니메이션이 연달아 나오는 게 아닌가?

이 자식들이 원본을 카피 뜬 걸 나한테 1만 8천원에 팔아먹은 거다. 그래도 그 때는 카피본을 그 돈에 주고 사도 별로 억울하지 않을 만큼 자료가 귀했으니까.

그 자료는 강당크루 선후배들이 모두 돌려봤는데 나한테 반납하면서 모두들 경탄을 금치 못했다.

당시 TV에 춤 좀 춘다고 나오는 댄스가수들이 간주에 보여주는 짤막한 브레이크 댄스는 이 자료에 비하면 유치원 재롱잔치 텔미 수준이었으니까.

 

우리나라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상업화해서 처음으로 성공 비슷하게 거둔게 피플크루다.

‘너에게’라는 노래로 생각보단 오래 살아남았고 후에 mc몽이라는 뜻하지 않은 인물도 배출하게 된 그룹.

당시 피플크루의 브레이크 댄스 에이스가 오성훈이란 스무살 청년이었다.

지금은 파워무브의 기본이 된 기술이지만 당시엔 너무나 충격적인 기술, ‘에어트랙’을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구사하던 사람이었다.

나이 스무 살에 국내 최고가 될 수 있는 분야가 브레이크 댄스였던 거다.

당시엔 그만큼 인재풀이 얇았다는 소리이기도 하고.

아직도 피플크루 비디오에서 보여주는 성훈의 깔끔한 에어트랙 4바퀴가 눈에 선하다.

HOT의 강타처럼 단발 길이에 5:5 가르마를 하고 웃통 벗은 채 등장하는데, 정말 강타 때문이 아니라 성훈 때문에 5:5 가르마를 하고 싶어 망할 곱슬을 펴기 위해 스트레이트를 해 보기도 했다.

(물 묻으면 오징어처럼 구부러지는 천상 곱슬이라 얼마 안 가 직모 따위 포기해 버렸다)

 

근처에 있는 대건고와 배틀하러 간 일

졸업여행에서 700명에 달하는 관중 앞에서 벌인 짤막한 쇼.(한 반 50명 15반까지 있는 대단한 학교였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설명회에서 공연한다고 그렇게 준비했는데 정작 사회자가 시간관계 어쩌고 해서 무대도 못 올라갔던 일

경일대 배틀

학교 매점에 배틀 신청한다고 대자보 붙이던 일

또는 새 학년 올라가서 팀원 모집한다고 대자보 붙이던 일

 

..

.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그 강당크루의 동료였던 준건이한테 전화가 왔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7년 만에 온 전화다.

이 녀석이 이런저런 이야길 하다 뜬금없이 묻는다.

 

혹시, 요즘도 춤 추냐?



어어? 아니, 그 쪽 사람들 못 만난 지 오래됐다.


 

잊고 살았는데 요즘 들어 다시 춤이 추고 싶어졌단다.

혹시 내가 아직도 춤추고 있으면, 같이 해보고 싶다면서…


네가 있으면 사람들은 모이잖아


준건이의 그 말에 다시 돌아본다.

 

고등학교 3년, 대학교 1년. 짧게 잡아도 4년 동안 춤은 가슴 설레는 무엇이었다.

남자 인생의 하프타임이라는 군 시절, 그리고 후반전 공이 울린 전역 후엔 그걸 대체할 무언가가 있었을까?

스물여섯 학생회장 시절이 딱 일 년간 그 공백을 메웠을 뿐 다시 그 자리는 공백이다.

 

아아…

설레게 하는 그 무언가,

무언가

 

준건이 질문이 왜 이렇게 들리지


혹시, 요즘도 설레냐?

 

“당신 설레게 하는 그 무엇이 있나요”에 대한 1개의 생각

  1. <!–[if !supportEmptyParas]–> <!–[endif]–>는
    익스플로러 말고 파이어폭스라는 웹브라우저가 있는데 요즘 그걸 번갈아가며 쓰다 보니까 서로 호환이 안 되는 문제가 발생하나 보네. 이 글도 파이어폭스에서는 잘 보이거든. 검색해보니 ms사의 오피스 프로그램으로 작성한 문건에서 어쩌고… 해 놨는데 짐승의 토익점수 보유자라 대강의 이해만 했다.

    중건인지 준건인지… 나조차 너무 헷갈려 방금 먼지를 털어내고 영고 50회 졸업앨범을 찾아 확인했다.
    준건이었다! 미안 준건아…

    미안한 맘에 변명하자면, 같이 춤추던 친구중에 준건이랑 기돈이가 있었거든. 받침을 정확히 발음하기 어려워 늘 중건, 기동으로 발음하다 보면 어느새 진짜 이름이 헷갈리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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