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의 언어생활

천지를 울리는 휴대폰 진동

네 문자가 나의 낮잠을 깨우는구나.

 

네 말하는거나 토론 방식이 어떤지 솔직히 말해달라고?

 

글쎄,

 

 

0. 네가 바꿀게 아니라 토론의 룰을 바꾸는 건?

몇 번이나 물었던 너희 스터디 토론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형수형이 저번에 같이 회 먹으면서 너한테 그런 말 했었지?

난상토론말고 아카데미식 토론 해 보라고.

사실 사적인 자리에서 느슨한 형태로 토론하게 되면 그건 논리 대결이 아니라 그냥 사교의 연속으로 여겨지거든.

“아 저자식 되게 진지하게 나오네~” 라고 뒷말이 나올수도 있지.

근데 아예 토론의 틀이 딱딱 정해져 있고 애초에 논리 진검대결을 선포한 상태라면 평상시 감정과 토론에서의 감정은 철저히 단절되지.(적어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생기지)

토론대회에서도 대회중에는 아주 잘근잘근 씹어서 묵혀놨다 발효시킬것처럼 싸우다가 대회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듯 동질감을 느끼거든.

철저하게 대회에서의 감정과 사적인감정이 단절되는 거지.

 

 

1. 너나 나나 너무 길게 말한다.

내가 너한테 주로 현대사에 대해 묻잖아, 예를 들어… 잘 생각이 안 나는군 ㅡ.,ㅡ…

아, 그래!

반민특위 같은거 설명해달라 그러면 너는 반민특위뿐 아니라 이승만 정권 일대기에 대해 네가 알고있는 모든걸 쏟아낼 듯 연이어 말하는 식이거든.

나도 이런식으로 상대 질문에 하염없는 답변을 쏟아 낼 때가 있는데, 이유는 두 가지

첫째는 내 설명이 스스로 분에 차지 않아서

둘째는 상대가 제대로 이해하는 것 같지 않아서

어느 쪽이든 설명하는 쪽이 개념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함.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편지가 길어집니다’ 라는 문구가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거든.

곱씹어 볼만하지.

 

 

2. 가르치려 드는 ‘-지’ 말투

이건 뭐란 말이지.

~했단 말이지.

~해야지.

너랑 논쟁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지’로 말맺음을 자주 하거든.

사교육 시장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애들 가르치는데 익숙해져서 입에 밴 건 아닐까 싶다.

‘-지’의 단정형 표현은 주장이나 신념을 말할 때 한번 딱! 박으면 소신있어 보이는데 단순한 팩트 전달 할때도 이걸 자꾸 쓰면 가르치려 드는 느낌이야.

 

주장하는 글쓰기에서는 ‘~인 것 같다’ 따위의 미적거리는 말투보다 ‘-다’의 확고한 말투가 낫다고 보는데 사적인 논쟁이라면 사용빈도를 조절하는게 좋을 듯.

 

 

 

3. 억양변화?

이건 별… 좀 부수적인건데.

원래 의견 대립이 심해질수록 언성이 높아지는건 보통이고.

목소리 큰 건 륜재가 한 수 윈데…

 

참고로,

나는 중요한 부분을 이야기 할 때 억양이 파도 타듯 넘실대거든.

마치 라디오 음량버튼을 잡고 쭉~ 키웠다가 쭉~내렸다가 하는 것처럼.

그게 버릇이면서 나의 연출이기도 하지.

 

 

 

4. 벤치마킹

쓰는 김에 더 쓰자. 어차피 공책 줄어드는 것도 연필 닳는 것도 아니니

 

정재의 말하기 방법 중에 흥미로운게 있거든.

어떤 문구를 완벽히 외워서 절묘한 상황에 써먹는거.

‘대중의 기억력은 짧고 그 지적 수준은 낮다’ 라던가,

‘제가 나서는 모양새가 될 것 같지만…’ 같은 말,

혹은 영화대사 같은 걸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외워둔 다음에 적재적소, 혹은 전혀 엉뚱한 상황에 연결시켜 웃음을 주잖아.

이건 상당한 강점이라고.

내겐 노회찬의 촌철살인의 초기버전쯤으로 느껴져.

 

윤재는 발성이 좋은지 말이 또렷하게 들리고 목소리에 힘이 있어 신뢰가 가지.

나는 억양은 풍부한데 발음이 정확하지 않거든.

워낙 뱉고 싶은 말이 많다보니 발음도 미처 하기전에 다음말이 앞말을 밀어내는 형상.

스스로 좀 더 신경써야지.

 

준영이는 적을 만들지 않는 말하기.

그의 주옥같은 말로는 ‘뭐, 글쎄… 내 생각에는… 아, 그래?’ 등이 떠오르는군

‘~~하니까’ 로 끝나는 말도 자주 하는데, 이게 분석이 아니라 수긍의 답변이거든.

‘너는 토익이 부족하니까, ~~해라’ 가 아니라

‘너는 다른건 다 되있으니 토익만 하면되니까‘ 뭐 이런식

‘너는 틀렸으니까’ 가 아닌 ‘너는 옳으니까’

 

 

닫는 말

아무리 생각해도 네 언어생활에 심각한 무언갈 발견할 수 없구나.

넌 말할 때 감정도 풍부하고 성량도 좋고 사고도 딱히 경직되어 보이지 않는데…

왜 그런 고민은 떠나지 않는지

 

절이 안 맞으면 리모델링하고 그래도 안 되면 딴 절을 찾아 봄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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