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은 알차게 보내야 한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내가 되어야 한다.
내게는 이런 류의 강박이 있습니다.
모범청년 같지만 사실은 매우 진 빠지는 일이지요.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전 10시 정도에 일어난다고 칩시다.
주말 낮잠은 다들 즐기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일어나서 휴대폰으로 기상시간을 확인하고는 자책합니다.
“자기 발전에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병신같이 늦잠으로 날려 버리다니!”
그래서 반성과 함께 일어나 남은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거든요.
“기왕 이렇게 늦게 일어난 거 갈때까지 망가져 보겠어!”
하며 한 시간쯤 더 자 버립니다.
자학하는 거지요.
도저히 잠이 안 올 만큼 자다 일어나(그래봤자 정오) 도서관을 갈까 밀린 책을 볼까, 평일에 여유가 없어 써 두지 못한 글을 정리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컴퓨터를 켭니다.
자주 가는 커뮤니티며 블로그에 들어갈 때마다, ‘아유~ 글 써야 하는데’ 하면서도 글쓰기 버튼을 누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머리에 탄수화물이 들어가야 뭔가가 나오겠다 싶어 맛집이 존재하지 않는 평범한 우리 동네를 배회하다 보쌈집에서 보쌈정식을 먹고 들른 만화방.
시마과장이란 만화책을 13편부터 16편까지 보고 나옵니다.
이 만화책은 일본 셀러리맨의 비즈니스 세계를 그린 걸작입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 만화책조차도 ‘뭔가 내 회사생활에서 얻을 게 없을까’하며 너무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만화책을 재미로 보는 게 아니라 경영 참고서적 읽듯이 합니다.
만화책 본연의 재미가 좀 수그러드는 기분이 들지요.
그리고 마이 스윗 홈 고시원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8년째 연습장으로 쓰고 있는 홈페이지에 이 글을 쓰는 현재시각 4시 18분.
‘하루중 가장 뜨거울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뭔가를 해야겠다!’ 스스로 독촉하는 나!
제게 통찰력을 발휘한다고 소개해 드렸던 승현이 누나가 예전에 해 준말이 떠오릅니다.
“네겐 유머가 없어, 유머는 여유에서 나오는 데 네겐 여유가 없거든”
응, 누나…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와 너무 오랫동안 싸우다 보니 어디까지 가라앉는지 모르겠습니다.
맥주 원료로 쓴다는 천연암반수 층까지 내려간 걸까요?
니체라는 철학자 아저씨도 그랬지요.
심연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그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 보게 되고.
악마와 싸우다 보면 그 악마를 닮아간다고.
나의 주말 오후는, 내가 나를 응시하고 어제의 나에게서 벗어나려는 오늘의 내가 일방통행길에서 마주쳐 서로 난립니다.
이거 참…
ESC 버튼을 누를 방법이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