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80이라 여기면
스무살까지는 봄날이지요
싹이 트고, 어제 오늘 다르게 자라는
지난 어린이날 연휴를 맞아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 시절 살던 동네를 다녀 왔습니다.
여행 주제는 ‘우리 인생의 봄날’
먼저 찾아간 곳은 동산병원 뒷편 사택가.
친구들과 풍뎅이 잡고 달리기 하고 자전거 타고 뭐 여튼 몸으로 할 수 있는 온갖 레크레이션을 다 하던 곳입니다.
당시에도 오래된 집들이 많아서 오가는 사람이 적으면 좀 무섭게도 느껴지는 곳이지요.
어린 시절 저희는 ‘여긴 정신병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이야기도 했었습니다.
전혀 근거 없는 소리였지만 그 땐 그 이야길 떠올리면 얼마나 무서운지…
지금은 관광 명소화 되어서 완전 하나의 공원이더군요.
대신 이제 풍뎅이가 살 만큼 울창한 숲이나 잔디 밭은 볼 수 없었습니다.
아래는 3.1운동길이립니다.
‘입니다’가 아니라 ‘이랍니다’라고 하는 이유는, 이게 3.1운동 길인지 처음 알았거든요.
우리에겐 눈 오면 포대(혹은 장판이었을지도)를 깔고 타던 익스트림 슬로프였을 뿐인데요.
이게 어느새 3.1운동길이 되어 있더라고요.
그 땐 정말 가파르고 길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줄어(?)들고 경사도 완만해 졌습니다.
네. 다만 내가 변할 뿐,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겠지요.(이건 옛날 광고 대사^^;)
여긴 어린시절 머리를 깎던 이용소 입니다.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더군요.
그땐 너무 어려서 이용소 의자 아래에 나무 침목을 받히고 앉아 머리를 잘랐는데,
어느새 앉은키가 과다하게 자라 미장원에서 허리를 낮춰달란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이 있던 짧은 골목길입니다.
이상하게… 짧아졌더군요.
골목길 길이를 줄이는 재개발 공사라도 했나?
밤이 되면 무서워서 슈퍼마켓이라도 가려고 하면 전속력으로 달려 빠져나오던 곳입니다.
아마 5살 때부터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6년여를 살았던 집의 대문입니다.
응? 그것 밖에 안 되나?
10년 넘게 살았던 동네보다 더 익숙한 데…
이래서 유년기가 중요한 가 봐요.
꽤나 큼지막한 화단을 중앙에 두고 5가구 정도가 모여사는 주택이었습니다.
중앙에는 목련 나무가 있고 화단 안에는 흙도 꽤나 깊어서 모든 가구가 김장독을 묻어 둘 정도였어요.
대문 사이로 빼꼼히 바라본 예전 우리 집은 구조만 어느정도 바뀌었지만 틀은 그대로더군요.
집에 바퀴벌레며 개미가 너무 많이 나와 어린 시절에도 경악을 금치 못하던 곳이었는데,
(파브르 같은 소년이 우리집에 살았다면 곤충학자로 대성했을 듯)
아파트로 이사간 후 다시 바퀴벌레가 나와 또 경악!
알고 보니 이사하면서 가져 온 그릇에 잠입해 온 거더라고요.
우측에 보이는 조그만 문이 재래식 화장실,
정면에 파란색 대문집은 한 때 음식점으로 운영.
어린 시절에도 식당 치고는 위치가 참 묘하다 싶었는 데 뭐 그리 오래 영업하지 못하더군요.
좌측 갈색 대문집에는 공놀이 하다 공 몇 번 넘겼습니다. 크흠…
리어카 가판으로 튀김을 판매하던 아주머니가 살던 걸로 기억해요.
일요일마다 가던 목욕탕(사진 속 등장인물은 지역 주민)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유치원 시절이었나?
여튼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함께 여탕에 갔던 기억이 뿌옇게 떠오릅니다.(제기랄!!!)
여기서 온탕에 빠져 심해로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다 어머니가 재빨리 잡아 당겨서 살아났지요.
그걸 보면 어린 애는 접시물에 코 박고도 익사할 수 있다 싶어요.
그 사건을 떠올려보면 이상하게도 물에 대한 무서움과 편안함이 공존합니다.
숨막혀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감정과 마치 양수에 들어간 것 같은 편안함
여긴 우리 가족 단골이던 대신슈퍼
반가운 마음에 안에 들어가 물건을 사려고 보니… 우유 냉장고 배치까지 변한 게 하나 없더군요.
아, 주인 아저씨가 한참이나 늙으셨다는 거 외엔.
초등학교 2학년 아람단 야영, 아마 둘쨋날 저녁이었던 것 같은데 우리동네가 그리워서 울었어요.
근데… 어머니 아버지 생각이 나서 우는 게 아니라 대신슈퍼 아저씨 얼굴이 떠오르며 막 눈물이 나는 겁니다.
아마 대신슈퍼는 당시 제게 익숙함의 상징 같은 거였나 봐요.
그 상징이 20년 나이를 먹고 슈퍼 아저씨에서 슈퍼 할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참, 안에서 뭐 이렇다하게 살 만한게 없어 껌을 하나 샀는데…
먼지가 그대로 쌓여 있더군요.
아마 이마트나 홈플러스에서 SSM을 만든다 해도 별 신경 안 쓰실 것 같은 상태였습니다.
내 인생의 봄날은 어땠을까요.
서른의 나를 상상이나 했을까요.
이 날 ‘우리 인생의 봄날’ 여행을 함께 해 준 후배님이 묻더군요.
선배는 어릴 때 꿈이 뭐였냐고.
탐정-> 서점 주인-> 출판사 사장 ->점빵 주인
뭐 이 정도로 변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점빵 주인은 아마 중학교 올라가면서 생활기록부에 쓰기 시작한 것 같은데,
당시 우리반 친구들 사이에서도 좀 센세이셔널 이었어요.
그 때부터 뭐 신자유주의 경쟁구도에서 얻는 성취 이런 거랑은 거리가 멀었던 걸까요.
진짜 내 점빵 하나 하면서 소일거리 하며 살고 싶었다 생각했거든요.
요즘 그런 마인드로 장사하면 SSM에 먹히기 딱 좋겠지만……
아…
이제 여름인데,
계절도, 나이도
불볕 아래서 어떤 과육을 익혀나가야 할 지……
내가 심은 봄날의 씨앗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