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개 목줄과 조갑제기자’로 제목을 썼다 너무 선정적인 것 같아 수정.
며칠전 맹견에 목줄은 물론 입마개를 하지 않고 산책을 시키면 벌금을 물게 하는 법률이 제정 진행중이란 기사가 나왔다.
우리에서 탈출한 맹견들이 사람을 물어 다치게 한 사건의 후속 조치다.
어제 동아리 뒤풀이에서 한 누나가 그러더라.
자기는 아무리 조그맣더라도 개가 무서운데, 그런 말을 함부로 하기 어렵다고.
개 주인에게는 가족같은 존재이고 실제로 (거의) 물지도 않는데 일종의 야박하게 군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
개를 사랑하는 주인도, 개를 무서워하는 누나도 함께 걸어가는 산책길이라면 어느 쪽에 좀 더 힘을 실어줘야 할까?
이 글 제목에 언급된 조갑제 ‘기자’가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말미에 이런 글귀를 남긴다.
어느 사회의 양식을 가늠해보는 한 기준은, “그 사회의 소수파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 라고 한다.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수적으로 소수인지는 모르겠으나 위협을 느끼는 쪽, 즉 약자라는 측면에서 소수의 개념이다.
우리 사회가 양식있는 사회를 지양한다면, 그리고 개 주인 역시 양식있는 애견 문화를 꾸려나가고 싶다면 조금 더 목줄을 당겨 잡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