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은 고전인가?
시간의 체를 통과해 살아남는 수작을 고전이라 했을때. 퇴마록은 고전인가? 고전 순수 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의 체로 친다고 했을때 수작일 수 있나?
CPU 같은 기계기술 발전은 일직선이라, 30년 전보다 지금 제품의 스펙이 뛰어날 수 밖에 없다. 30년 전 cpu는 현재의 실질적 효용은 없고 상징성 때문에 수집의 효용 정도가 있을뿐. 그렇다면 퇴마록은 지금 읽어도 재밌는 장르문학작품일까? 아니면 한국 오컬트 소설이란 장르 개척자로서 상징적인 기념비일 뿐일까. 마치 ‘나 집에 286 컴퓨터 아직도 있다’ 정도의 자랑일 뿐일까.
국민학교 시절 쓰던 컴퓨터의 현재 사용가치는 사라졌지만, 그 당시 컴퓨터를 접한 덕분에 지금 IT 회사에서 밥벌이 하고 있을 수 있다고 보면. 30년 전 한국에 오컬트 장르문학을 알리고 시장을 만든 작품이니. 지금 설혹 고전 반열에 못 오른다해도, 최소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오니의 말 못할 사연
한국 도깨비는 익살스런 존재고 일본 오니는 아무 이유없이 사람을 죽이는 잔혹한 존재. 마치 빛과 어둠처럼 한일 귀신을 대비하며 설명하는 구도였는데. 역시 세상사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너무나도 크고 잦은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사람 목숨이 낙엽처럼 쓸려가던 일본 자신들의 시대상을 설명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땅이 뒤집히고 쓰나미가 밀려오는데. 죄를 지을 힘도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어린 아이는 물론, 평생을 이웃에 헌신하던 어르신도. 예외없이 혹은 랜덤하게 죽어 나갔을거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권선징악이나 개인의 원한을 들이대는 귀신으로 죽음의 부당함, 불합리함을 해소할 수 있을까? 이유 없이 그냥 죽이는 오니가 훨씬 더 ‘납득’ 되었을 것.
운명은 확정론적 세계관네 집에 거는 명패가 아니다.
사주명리학에서 운명은 확정론 개념이 아니다. 운은 운전하다 할때의 그 운, 즉 오퍼레이션이고. 명은 하늘의 명령. 즉 하늘에서 내려오는 피할 수 없는 내용증명이다. 내 앞으로 송달되는 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게 운명이다.
각 시기별로 내게 주어질 하늘의 명을 살펴 어떻게 운신할지 궁리하는게 사주다. 궁즉통이라고, 어떻게든 수를 내 보려는 극동아시아 인간들의 발버둥이 수천년을 보내며 나름의 체계를 갖춘 것.
자유의지만 외쳐대는 사람은 하늘의 무게추에 처맞아보지 못한 사람이고, 운명만 외치는 사람은 명 뒤에 숨어 오퍼레이션 업무태만하려는 작자다.
일하다 보면 사무실에서 서로 가장 많이 말하는 접두어가 ‘일단’인데. 본질적인 해결책은 모르겠고. 일단 이렇게라도 해보자는. 임시방편이면서도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축구 경기가 시작되면 이미 선수 명단은 확정된다. 내가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건 포메이션과 공수 완급조절 같은 운영 뿐.
과학이라는 미신
인간은 위험할지도 모르는 뭔가가 모호하면 미쳐버린다. 나한테 해가 될지 아닐지 빨리 판단 못하면, 모호한 상태에서 계속 공회전 돌리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생존에 해가 된다. 뭐가 됐건(심지어 눈가리고 아옹일지라도) 확정을 지어야 한다.
그게 야생 시대에는 빠른 시간 내에 해결됐다. 사자거나 들개거나, 독버섯이거나 팽이버섯이거나. 수초에서 수분내 확인할 수 있었다.
근데 시대가 바꼈다.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앞으로 5년후에 유망할지. 지금 투자하는 이 사업이 몇년 내에 잘될지 혹은 망할지. 인간은 이렇게 장기적인 불확실함에 직면한 적이 최근까지 없다.
불확실을 어떻게든 해소하기 위해 아주 예전에는 샤머니즘, 좀 더 먹물이 들어가면 신학, 더 최근에는 과학이라는 수단을 쓰는데. 결국 과학도 모든 것을 명명백백히 밝혀내지 못한다는 걸 인식하지 않으면 샤머니즘과 신학이 지난 한계를 똑같이 지니는 오만한 미신이 될 뿐.
혹시 모르지, AI가 신의 한수를 알아내 버려 모든 모호함이 사라져버리는 세상이 온다면. 그 시점의 AI는 미신이 아니라 그냥 신이 될지도.
후레시맨과 잔혹동화
TV에서 방영하던 일본 만화 중 결말이 너무 잔혹하거나 야하거나, 적어도 서사가 한국 정부 보시기에 애들에게 적합지 않다고 보아 방영 중단한 건들이 꽤 많다 들었다. 나디아도 그랬다던가.
성 문제는 한국 별명이 ‘유교 탈레반’인데. 아동 콘텐츠도 너무 막혀 있지 않나. 아이들에게 진짜 좋은게 아니라, ‘어른들 생각하시기에 아이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스토리를 체로 치고 주려는 경향.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지 않은지.
PC통신과 문화대폭발
90년대 PC통신이 몰고 온 문화현상이 어디 한 두가지랴. 영화 접속처럼, 퇴마록도 PC 통신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면서 터진 문화 대분출 화산 중 하나일 것.
PC통신하다 인터넷으로 넘어오니 소속감 없이 뭔가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에서 오는 허전함을 느꼈는데. 마치 대학교 새내기때, 내게 배정된 교실도 짝도 없이 강의실을 전전할 때와 비슷한 느낌. 책을 읽으니 그때의 그 느낌이 딱히 이유없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