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서판과 이판사판

‘신언서판(身言書判)’

당나라 시대 관리 등용의 기준이었다고 하고,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몸을 보고, 이어서 말을 보고, 그 다음엔 글을 본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결국 그 사람의 판단력을 보기 위함이다.

판단력은 눈에 쉬이 보이는 능력이 아니므로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 같이 몸과 말과 글을 보는 것이다.

그 당시엔 고위관리가 그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좀 확대하면 당시 인간의 가장 중요한 능력을 판단력으로 봤다고 해도 그리 무리는 아닐 것.

이 적절한 판단을 위한 프레임워크가 바로 ‘이판사판(理判事判)’이다. 국어사전에는 ‘막다른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으로 나오는데. 명리학 세계관에선 좀 다르다.

이판은 말 그대로 이치를 따지는 판단. 즉 점을 치는 형이상학적인 영역이고. 사판은 경험론적 세계관의 판단이다. ‘선사판 후이판’이 당시 관료들의 룰이었다고 한다. 먼저 일을 열심히 해 보고, 최종 판단하기 전에 점을 쳐 보는 것.

먼저 현실에서 내가 할 일을 잘 하되, 그게 잘 될지 안 될지는 하늘의 점을 쳐서 이치를 따져보자. 어쩌면 제갈량의 명언인 ‘진인사 대천명’과도 맞닿아 있다.

여기서 명리학과 신점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신점은 교통사고처럼 피할새 없이 들이닥치는 초월적인 무언가라면. 명리학은 인간의 힘으로 나름 용을 써보고. 이어서 최후의 궁리로 한번더 판단에 신중을 기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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