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같은 급’에서 모델을 놓고 비교한다. 소나타는 K5랑 가격 비교를 하지, 그렌저나 G80이랑 비교하진 않는 것. 보통 ‘같은 급’이면 전기차가 더 비싸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이게 사실이기도 하다.
아이오닉5는 투싼, 아이오닉6는 소나타. 이게 소비자의 인식이다. 그런데 투싼은 3천5백인데 아이오닉5는 4천 5백. 소나타는 3천인데 아이오닉6는 역시 4천 5백. 소비자 머릿속에선 전기차 가격표가 얼추 1~2천 더 비싸다.
TCO(총소유비용)로 접근하면 전기차가 상당히 많이 따라잡는다.
구매가에서 1~2천씩 차이나 버리면 그걸 메우기는 어렵지만, 차를 운영하면서 들어가는 비용을 죽 나열하면 전기차가 상당히 따라잡을 순 있다.
- 등취세 할인 : 초기 등록비에서 140만원 할인
- 낮은 자동차세 : 전기차는 1년 13만원쯤, 1600cc 내연차의 절반 수준
- 고속도로 톨게이트비와 공영주차장 50% 할인 : 매년 없어진단 말이 있는데 어쨌든 현존하는 거니까
- 소모품/정비비 : 워셔액 넣고 타이어만 간다. 물론 배터리와 모터 고장나면 어떻게 할 거냐는 반격이 있지만 현기차 기준으로 내연차는 동력계통 5년 보증인데 전기차는 10년 보증. 10년 이상 타면 내연차건 전기차건 더 이상 감가 논하는 건 거의 무의미
- 지자체 추가 보조금 : 동작구는 80만원 추가로 주는데, 이건 너무 소수 지자체만 주는거니까…
근데, 우리가 생각하는 두 차가 진짜 같은 급일까?
이 비교의 전제조건은 ‘같은 급’이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투싼과 아이오닉5는 정말 같은 급일까?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급을 나누는 기준은 뭘까?
- 가장 먼저 크기. 소비자 인식 상 투싼과 아이오닉5는 거의 같은 크기다. 그래서 급이 같다. 자세히 들어가면 아이오닉5 제원은 세단과 SUV 사이에 있는 포지션이라 다르긴한데. 소비자는 그리 디테일하게 안 따진다. 머리공간 넓고 해치백 트렁크면 그냥 SUV인거다.
- 럭셔리 브랜드냐 일반 브랜드냐. 벤츠 C200과 현대 아반떼를 덩치가 같다고 같은 급으로 보지는 않는다. 현대 투싼과 아이오닉5는 한집안 식구니 당연히 해당 없음.
- 마지막 하나. 성능이다. 같은 모델도 고출력 모델은 더 비싸다. 이 성능 항목은 전기차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별로 떠오르지 않는 차별점일 것. 투싼은 180마력, 아이오닉5는 320마력이다. 내연기관 문법으로 치면, 투싼은 1.6 가솔린 터보고 아이오닉5는 2.5 터보에 4륜구동 탑재한 것. 만약 투싼에 320마력짜리 엔진 옵션이 있다면 얼추 500만원은 내야할 것.
그 외에 잔잔바리로 편의성 옵션이 있으면 그것도 반급 정도 차이를 인정해준다. 같은 모델이지만 옵션으로 내부 등급을 나누는 것처럼(현대의 인스퍼레이션). 이 관점에서 전기차가 구조적으로 가지는 정숙성과 저진동 자체가 옵션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투싼에 두터운 차음유리와 방음제를 덕지덕지 발라 전기차 수준의 NVH를 옵션으로 판다면 얼마일까? 얼추 200만원? 투싼에서 이것까지 넣고 살 사람은 잘 없긴 하겟지만. 넣어서 구매하는 고객 수요도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조건 안 붙여도 가격표가 같아지는 순간이 온다.
몇년 전까지는 확실히 총소유비용 측면에서도 내연기관이 앞섰던게 맞고. 전기차는 나같이 그냥 새로운 장난감이 필요하거나 전기차 특유의 어떤 장점에 꽂혀서 가격 상관없이 사거나, 아니면 자가 충전기 있고 주행거리 길어 아무리 유지비로 뽕뽑는 특수한 사람에게만 선택받았다.
이제 배터리 가격 인하로, 가장 낮은 경차 등급에선 내연기관과 전기차 가격표가 거의 붙어버렸다. 대표적인게 레이와 캐스퍼. 레이는 내연차 대비 10% 정도 더 주면 (2000만원 vs. 2200만원) 전기차를 살 수 있고. 캐스퍼 전기차는 아예 휠베이스를 넓게해 경차 규격을 포기했음에도 캐스퍼 고객이 충분히 고려할 만한 가격대까지 들어왔다.
내연기관 경차를 몰아본 사람은 안다. 그 작은 차체가 주는 장점 만큼, 작은 엔진으로 인한 불편이 함께 따라 온다는 것. 근데 작은 차체 장점은 그대로 가지고 엔진은 두배쯤 업글시켜 준다? 그럼 10% 비싼 건 충분히 납득된다. 게다가 경제성에 민감한 게 경차 소비층이니. 유류비의 장점도 크게 어필되고.
경차에서 점차 소형차, 중형차, 이어서 대형차까지. 내연기관과 전기차의 가격표가 붙는 순간뿐 아니라 언젠가는 크로스하게 되는 시점이 올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