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마땅한 러닝 코스를 찾다가. 도저히 걸어서는 답이 안 나와. 차를 타고 좀 갔더만. 확실한 답이 나왔다.
양재 시민의 숲 역. 매헌 시민의 숲. 넓은 주차장, 전기차 충전소, 충분히 넓고 다양한 트랙 코스. 여기에 이것저것 때려박아 놓은 듯한 각종 추모탑.
가장 메인은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비인데. 사진을 안 찍었네. 대학교 도서관에서 윤봉길 의사 위인전을 보며 ‘이게 진짜 진정 긍정적 의미의 마초’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러닝코스 짜다가 공원에서 다시 만났다.
23세에 독립운동 하겠다고 처자식과 생업 다 놓고 떠나서, 25세에 도시락 폭탄 던지고 사형. 도서관에서 윤봉길 의사 위인전 읽으며 감탄하던 내 나이가 스물 다섯. 군대 전역하고 나서 바로.
지금 러닝하며 다시금 매헌의 일대기가 적힌 추모비를 만나니, 사십대의 내 고민이 납작해진다. 무어 그리 대단한 인생을 살겠다고 고민하는지.
사전에 지도를 보고 찾아가보고자 했던 건 삼풍백화점 위령탑. 미국은 9.11이 벌어진 바로 그 자리에 그라운드제로라는 위령 공간을 만들었는데. 역시 어떤 면에서 누구보다 더 자본위주의 나라. 그 자리엔 고가 주상복합을 짓고, 위령탑은 상당히 엉뚱한 공간에 마련했다.
벌써 31주년이 됐구나. 대통령 명으로 보낸 조화도 있어서 신기해서 촬영.


그 외에 무슨 육이오 시절 이름없는 용사들 위령탑, 버마 사건 위령탑 등등. 귀퉁이에 공원 조성한 김에 모든 위령탑을 다 몰아넣은 느낌.
심지어 메인인 윤봉길 의사 관련 시설은 그나마 공원의 메인 자리에 있고. 그 외의 추모시설들은 찻길 건너. 마치 피자 조각처럼 생긴 공원의 가장 끄트머리에 길 건너 떨어져 있다.
고민이 있으면 걷고, 그래도 안 되면 뛰자. 그러다 시대를 앞서간 위인을 만나면. 혹은 어이없는 일로 생을 달리한 분들의 위령탑을 만나면. 지금의 내 고민은 한없이 납작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