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전쟁기념관, 누구의 시점으로 전쟁을 기념할 건가

기념: 어떤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함.

국어사전을 보니 기념은 어떤 뜻깊은 일을 잊지 않기 위해 행하는 행위이며, 그 일이 기쁜 일이 아닌 슬픈 일이어도 관계 없어 보인다. 일상에서 기념은 보통 축하하는 상황에서 쓰이다 보니 전쟁과 기념이 붙어 있는게 좀 어색했다.

용산 전쟁기념관은 전쟁을 누구의 관점. 즉 누구의 기억을 토대로 기념하고 있을까?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 관점이라는 건 당연하나. 대한민국 안에서도 전쟁의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있지 않나?

운 좋은 전쟁기술자, 백선엽

기념관 입구 안내석부터 전시장 내부 곳곳에서 백선엽 이란 인물을 만날 수 있다. 애초에 여기 기념사업위원장이 백선엽이다. 기념관이나 전시 전체가 큰 틀에서 그의 시각에서 설계됐을 테고, 최종 전시물은 그의 의중을 헤아려 매만졌을 게 분명하다.

일제 치하 시기에는 독립군의 목을 베고, 미 군정 치하면 공산당을 쏘고. 이념과 관계 없는 전쟁 기술자였다고 봐야하나. 적어도 본인 친일 행적에 대해 냉철한 자기반성을 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아니, 보통은 그런게 가능한 사람이 특별하고 특수하다 봐야겠지. 다만, 범인이 초인의 대접을 받는게 문제라면 문제.

그는 전쟁에 능한데다 긴 전투 동안 한번도 총탄이 그를 건드리지 않은. 무탈하게 살아 남은 특별한 행운아 아니었나 싶다. 20대의 나는 백선엽을 이렇게 후하게 선심쓰듯 평가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내 평가는 상당히 유해졌다.

시대가 그러했고, 장삼이사로 처세 했으되. 갑남을녀와 달랐던 건 유달리 그의 전쟁기술이 좋은데다 운까지 겹친 것. 그렇게 살아남아 본인의 시각으로 전쟁을 기념하는 자리까지 오르게 되지 않았나 싶다.

새삼 느끼는데, 결국 오래 살아 남아야 한다. 백선엽은 2020년 한국 나이로 101세에 사망했다.

좋건 싫건, 한국 군대와 6.25 근간을 관통하는 척추 같은 인물이 백선엽이다. 그를 평가하는 관점이 곧 6.25를 평가하는 관점일지도.

백선엽 개인과, 그를 간판 스타로 내세워 체제를 지키고 싶은 지배층은 각자 이해관계로 긴밀하게 유착된 게 아닐까. 세계 어디 건 개인과 체제의 과거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신격화, 위인화가 꽤나 필요한가 보다. 내가 백선엽이라면 살아 생전 저런 문구가 기념관에 걸리면 낯 뜨거울 것 같은데.

정부와 국군이 한강다리 폭파하고 도망간 일은 아주 건조하게 적혀 있다. 우측 상단 사진과 캡션은 ‘미군의 폭격’ 내용인데. 한강 다리는 미군이 끊었다는 오독을 의도한 건 아닐까. 내 시각이 너무 삐딱한건지…

당시 이런 병력차임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북진을 하려고 했다니. 난감하네.

아래는 이승만 워딩을 그대로 따 놓은 것 같은데. 맥락을 살펴야겠으나, 자신이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라는 당연한 이야길 왜 굳이 붙이는지? 나르시즘인가 약한 리더십에 따른 불안감의 표출인가.

전쟁기념관이 6.25를 어떤 시각으로 그리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한 장. 자유의 수호자들 vs 새벽의 침략자들. 양 진영 간 싸움이 6.25.

목숨을 건다는 것

내 목숨을 건다는 건, 남의 목숨도 앗아올 준비가 됐단 소리가 아닐까. 도박 할 때도 내 판돈 만큼 상대도 등가의 판돈을 걸어야 판이 시작된다. 상대 의중과 관계없더라도, 내가 목숨을 거는 댓가로 남의 목숨을 가져가기도 하겠다는 구도가 성립되는 곳. 그곳이 전쟁터 아닌가.

이런 글귀를 보면 피 끓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조국이나 민족이란 단어에 대한 감수성이 다 식은 것은 아니다. 어차피 한번뿐인 삶. 자신이 원하는 한 개념을 지키기 위해 던진다는 건, 그대로 멋진 일 아닌가 싶다. 근데 목숨을 던질 만큼 극단적으로 특정 개념을 숭상하면, 대개 남의 평온한 삶에도 피해가 가더라고.

군대 수양록에 국방일보 스크랩해둔 것 중 이런 류가 많았다. 무명 용사가 북한 전차 해치를 열고 수류탄을 까 넣었다거나, 후퇴하지 않고 참호에 있다 캐터필러에 박격포탄을 밀어 넣는다거나. 숱한 무명 용사가 나름의 소신이나 임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잃었다.

낙킹온 헤븐스 도어, 보헤미안 랩소디와 너무나 유사한 도입부. 처음 사람을 죽여 본 젊은이의 심경은 마치 표절인 듯 비슷하다고 봐야겠지.

지금은 천문대가 있는, 동네 어지간한 간판에 ‘별빛마을’을 모두 접두어로 붙이는 그 곳도. 50여년 전 무지 뜨거운 별빛이 쏟아지던 곳이더라.

학창시절 배운 6.25 때 ‘중공군’ 이미지가 딱 아래 사진이다. 북과 꽹과리를 치며 게 때처럼 밀려 내려온다는 것. 20세기 전투가 삼국지도 아니고. 정말 북과 꽹과리를 친다고 상대가 겁을 먹을까? 기도비닉을 깨고 미친듯 소란 피우는 허장성세가 칼과 활이 아닌 총과 박격포가 날라다니는 20세기 현대전에 가능한가 싶다.

기관총의 발명으로 육지전에서 대량살상이 손쉬워진 시점인데도. 그런데도 교과서를 포함해 여기저기서 북과 꽹과리를 치고 피리를 불었다니까 뭐 그렇다고 알아야겠지. 아직도 미스테리긴 하다.

저런 훈령 판을 부대 앞에 굳이 세운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당시 양민 학살이 있었단 반증이다. ‘쓰레기 투기 금지’ 간판은 쓰레기 불법 투기장에 붙는다.

기념관 입구 초입에 있는 조형물인데. 제목을 보고 내 미의식에 물음표가 떴다. ‘아름다운’ 섬 독도라니. 독도의 정치 경제적 중요성은 알겠으나. 이 곳이 미적으로 정말 예쁜가? 동남쪽 뱃길따리 200리에 위치한 게 아니고. 안면도 꽃지해변이나 월미도 앞에 위치하고 있어도 아름다운 섬이 됐을까?

군필자 추억소환 장치

군필자들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추억 회상 버튼이 많다. 군생활이 아예 외상증후군으로 남은 사람이 아닌 이상은.

프라모델 부품 틀을 써서 군인 한명에게 지급되는 물품을 전시해뒀더라. 이렇게 보니 한 명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품이 얼마나 간소한지. 저기다 전투에 필요한 장비를 제하면 더욱 간소해지니.

세면백은 정말 강력한 추억 소환 버튼이었다. 군대 동기한테 보여주니, ‘흰색 밴드가 좀 누리끼리해야 더 현실감 있는데’라더라. 우리 소대만 구막사라, 세면장이 있는 신막사까지 세면백 들고 갔다가 돌아오면. 이미 신발에는 다시 흙이 묻고. 세면 자체는 몸을 개운하게 씻어내는 행위인데, 왜 세면백을 보면 좀 서글픈 추억만 떠오르는지.

깔깔이 외에는 다들 신형이 보급되나 보네.

중화기 중대의 특권이라면 특권. K-1 기관단총. 무게가 조금이나마 가벼워 휴대하고 행군할때 이점이 있는 대신. 경험적으로, 사격 명중률은 K-2보다 떨어지더라.

나왔다. 6주 간 기초군사 훈련을 제외하고 2년을 함께한 내 주특기. 1127. K4 40밀리 고속유탄기관총. 이거 납품가가 소나타 1대 가격이라 전방에만 배치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나라 국방비가 얼마인데. 고작 1대 2천만원이 없어 전방에만 배정했겠냐 만은.

주특기 교육에서 듣기로 K4는 95% 전방에 배치된다고 했지. 후방은 육군훈련소 주특기 조교랑 공수부대 정도 밖에 없다고. 주특기 배치 받는 순간 전방 확정.

이건, 같은 내무실을 썼던 90밀리 무반동총. 근데 정확히 우리 소대가 썼던 90밀리는 아니고, 버전이 좀 다르더라.

좋건 싫건, 근현대사를 기념하는 자리에서는 친일인사를 만날 수 밖에 없다.

너무 화창하던, 추석을 앞둔 서울의 한 낮. 이 때 창 밖 풍경과 날씨를 저장해 두고자 한 컷 올린다.

장소: 전쟁기념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9 전쟁기념관

사족. 박물관이건 기념관이건 서울이 최고/최대

예전 국립중앙박물관 방문에 이어, 이번 전쟁기념관을 갔다와서 새삼 느낀 건. 어찌보면 너무 당연히 서울에 있는 박물관이나 기념관이 전국 최고/최대 규모라는 거다.

그간 관광지에 있는 지자체나 사설이 운영하는 박물관을 잘 챙겨가는 편이었는데. 진짜 밀도 높은 콘텐츠는 서울에 있었다. 상식적으로 당연하다. 세계 어디를 가나 유명한 박물관은 그 나라 수도에 있지 않나.

아직도 가 볼 곳이 많이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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